김열호
金閱浩1897 ~ 1920. 11. 2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경신참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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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7년 태어났다. 출생지는 알기 어렵고, 1920년경 북간도(北間島) 옌지현(延吉縣) 2도구(二道溝)에 거주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북간도의 한인들도 대대적인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해 3월 13일 용정촌(龍井村)의 서전대야(瑞甸大野)에 운집한 3만 명이 넘는 이주 한인들은 ‘조선독립축하회’를 거행하고, 대오를 맞춰 일본영사관을 향해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중국측의 공격을 받고 17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시위가 끝난 후, 북간도 지역의 민족운동가들은 이전부터 조직되어 있던 간도조선독립운동의사부(間島朝鮮獨立運動議事部)를 대한독립기성총회(大韓獨立期成總會)로 개편하였고, 다시 간도조선국민의회(間島朝鮮國民議會)를 거쳐, 같은 해 5월 17일 간도대한국민회를 탄생시켰다. 간도대한국민회는 연길현 춘양향(春陽鄕) 합마당(蛤蟆塘)에 본부를 둔 총회를 설치하고, 혼춘현(琿春縣)을 뺀 북간도 지역을 중부(中部) 및 동·서·남·북부 등 5개 구역으로 분리해 지방총회를 만들었다. 1920년 11월경 간도대한국민회(間島大韓國民會) 경호원으로 활동했음이 확인된다. 대한국민회는 이주 한인의 자치와 민족운동을 이끄는 한편, 국민회군(國民軍)이라는 항일 독립군단(獨立軍團)을 편성했다. 같은 시기 서북간도에는 수십 개의 독립군단이 결성되었는데, 이들 독립군단 소속의 독립군들은 유격대를 편성 국내로 진입하였다. 독립군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 일제는 1920년 10월 2일 ‘훈춘사건(琿春事件)’을 조작한 후, 이를 구실로 약 2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을 출동시켰고, 북만주로 이동하던 독립군 연합부대는 허룽현(和龍縣) 청산리(靑山里)에서 대승리를 거두었다. 청산리전투에서 대패한 일본군은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을 자행하였다. 특히 패전 당사자인 73연대는 허룽과 룽징, 옌지의 한인 마을을 돌며 야만적인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 과정에서 1920년 11월 2일 옌지현 두도구 서남연지(西南烟地)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총살당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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