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규
金永奎1898. 9. 13 ~ 1952. 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부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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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8년 9월 13일 경상남도 양산군(梁山郡) 동면(東面) 법기동(法基洞, 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출가하여 범어사(梵魚寺) 소속 지방학림(地方學林)을 졸업하고 불교전문 강원에서 불교사상을 연구하였다. 1919년 2월 하순경 불교계의 민족대표 한용운(韓龍雲)이 서울에서 내려와 범어사 주지 오성월(吳惺月)과 이담해(李湛海)·오이산(吳梨山) 등을 만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에 범어사의 승려였던 차상명(車相明)·김봉환(金奉煥)·김상기(金相琦)·김한기(金漢琦) 등과 함께 상경하여 3월 1일 파고다 공원에서 열린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서울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귀향한 후 차명환·김봉환·김상기와 함께 범어사 소속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중등학교 과정의 지방학림 학생들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전개할 계획을 세웠다. 1919년 3월 18일 동래면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를 등사하는 등 사전 준비를 진행하였다. 3월 17일 범어사 경내에서 열린 명정학교와 지방학림 학생들의 졸업생 송별회 자리에 참석하여 축사를 한 후, 이튿날로 계획된 만세시위에 적극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어서 다음날의 만세시위를 위해 4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 동래면으로 출발하였다. 동래면에 자리한 불교포교당(현 부산 법륜사)에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던 중 비밀이 누설되어 20여 명의 일본 군경이 기습 출동하였다. 차상명·김상기·김한기 등과 함께 붙잡혀 경찰서로 끌려가던 도중 탈출하였다가 3월 19일 당일에 만세시위를 이끌던 중 다시 붙잡혔다. 1919년 5월 2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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