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英圭

英圭

1888. 11. 5 ~ 1919. 4. 1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英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양평(楊平)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양평군 지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8년 11월 5일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개군면(介軍面) 향리(香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양평군 지제면(砥堤面, 현 지평면) 곡수리(曲水里)에 거주하며, 4월 11일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양평군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0일 서종면(西宗面) 문호리(汶湖里)에서 시작되어 3월 23일부터 본격화되었다. 3월 30일 용문면(龍門面) 광탄리(廣灘里)에서 2,000명, 4월 1일 양서면(楊西面) 도곡리(陶谷里)에서 2,000명, 4월 3일 갈산면(葛山面, 현 양평읍) 양근리(楊根里) 만세시위에서 4,000명이 참가하는 등 대규모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지제면 곡수리에서도 장날을 맞아 4월 4일 오후 2시쯤 약 3,000명의 군중이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전날 있었던 갈산면 양근리 만세시위와 함께 양평군에서 있었던 만세시위 중 가장 치열하였다. 일본 헌병의 폭압적인 탄압으로 시위 참가자 중 사망자 5명, 부상자 2명이 발생하였다. 4월 11일 지제면 곡수장터에서 다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만세시위를 일으키기 위해 운동 참여를 요구하는 선전문을 직접 작성하여 각 유지들에게 배포하였다. 일본 헌병의 무차별한 탄압으로 만세시위 참가자들은 해산하였고 상점은 전부 철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를 이끌던 중 일본 헌병의 총탄을 맞고 사망하였다. 그 뒤에도 일본 헌병은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시위 참가자들을 찾아다니며 폭력을 행사하였다. 이날 시위를 위해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기를 준비했던 이철영(李喆榮)은 행방불명되었고, 70세 노인인 이호승(李鎬承)은 헌병이 발사한 실탄을 맞고 즉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