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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琪

永琪

1871. 5. 9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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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永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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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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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관련 사건

  • · 합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1) 1871년 5월 9일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대양면(大陽面) 대목리(大目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합천군 합천면 만세시위를 이끈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합천군 합천면의 만세시위는 대양면 주민이 중심이 되었다. 합천군 대양면 무곡리(茂谷里) 출신의 강홍렬(姜弘烈)은 고종 인산에 참여해 서울의 만세운동을 목격한 후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어 합천면과 대양면 인사들을 만나 거사를 논의하는데, 3월 19일 합천 장날을 기해 만세를 외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 날 오후 4시경 읍내 시장으로 간 강홍렬 등은 군중 500여 명과 독립만세를 외쳤다. 출동한 일본 경찰이 주도 인사 16명을 연행하면서 강제로 해산시켰다. 이튿날인 3월 20일 대양면 마정(馬亭) 마을에 모인 주민들은 전날 시위 현장에서 검거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심맹권(沈孟權) 등 12명이 결사대를 조직해 시위를 이끌기로 하였는데, 이때 결사대의 한 사람으로 이날의 시위를 주도하였다. 주민을 이끌고 읍내로 들어가자 각 면으로부터 나온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군중 앞으로 나가 “나라 잃은 백성은 사람 아닌 닭과 개와 같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싸워야 한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독립만세를 외치며 읍내 거리 곳곳을 행진하다가 오후 7시경 합천경찰서로 몰려가 건물을 포위하고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를 대표해 구금된 인사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자 서장은 시위대가 먼저 해산하면 구금된 이들을 석방하겠다며 즉각적인 실행을 거절하였다. 격분한 시위대가 경찰서를 향해 투석하고 일본 경찰을 구타하면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려 시도하자 실탄을 쏘며 이를 저지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호준(金浩俊)·강시만(姜時晩)·추용만(秋鏞滿)과 함께 총에 맞고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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