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락
金榮洛1888. 11. 17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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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1888년 11월 17일 충청북도 충주군(忠州郡) 이유면(利柳面) 독동(篤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주도하던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 등은 1910년 8월 일제의 강제병합을 전후하여 만주로 활동 근거지를 옮기고 보약사(保約社), 향약계(鄕約契), 포수단(砲手團) 등의 자치단체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들은 그 해 4월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대화사(大化斜)에 모여 총회를 열고, 보약사, 향약계, 포수단 등을 통합 확대하여 대한독립단을 조직하였다. 류허현 삼원포에 본부를 둔 대한독립단은 창단 초기 중앙 및 지방조직을 두었다. 중앙본부에는 도총재부(都總裁部)와 사무기관인 총단(總團)을 두어 도총재부의 도총재는 박장호, 부총재는 백삼규였고, 총단의 총단장은 조맹선, 부단장은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이었다. 대한독립단은 창립 초기 세력 확대를 위해 군자금과 단원 모집에 힘써 그 해 말 수많은 지방지단을 설치할 수 있었다. 지방지단은 환런(桓仁)·푸쑹(撫松)·린장(臨江)·관톈(寬甸)·지안(輯安) 등 남만주의 10개현에 설치되었다. 한인 동포 1백호 이상 지역을 구(區)로 정하여 구관(區管)을 두었고, 10구마다 단장을 임명하고 그 아래 부단장·총무·외교장·참모장·통신장 등의 간부를 두어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남만주를 중심으로 국내진공작전을 벌이며 국내지단을 설치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19년 지안현 삼도구(三道溝)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그 해 5월 같은 곳 삼도양차(三道陽岔)에서 이기섭(李基涉) 등 벌목공을 대상으로 단원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1919년 6월 27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1월 1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8년 10월 5일 평양형무소에서 가출옥하였다. 정부는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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