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성
金永聲1863. 2. 3 ~ 1959. 5.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양회일)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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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63년 2월 3일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동강면(東江面) 매곡리(梅谷里)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국권피탈기 호남지역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붙잡혔다. 1909년 재판 당시 주소는 전라남도 흥양군(興陽郡) 대강면(大江面) 당곡리(堂谷里)였다. 1907년 전국적인 의병전쟁이 일어났다. 후기의병 시기 호남의병은 전국 의병을 대표했다고 할 정도로 격렬하였다. 그 결과 일제의 탄압도 가장 강렬했으며 희생자도 많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호남지역 의병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전라남도 흥양군 일대에서 3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군수품과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음)2월 13일 흥양군 남양면(南陽面) 하와리(下臥里) 공전영수원(公錢領收員) 조원서(趙元瑞)에게서 군자금 239냥, (음)3월 20일에는 흥양군 남면(南面) 송천리(松川里) 공전영수원 조중범(趙仲範)에게서 군자금 14원 60전을 모금하였다. 이어 5월 10일 경에는 흥양군 대서면 남양리(南陽里) 송성여(宋成汝)에게서 100냥의 군자금을 모금하고, 흥양군 남양면 거군리(巨君里) 채중현(蔡仲玄)에게서 쌀 1섬을 수급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붙잡혀 1910년 1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이른바 「해군형법 위반 및 조선임시보안령 위반」 으로 징역 10년을 받았다. 옥고를 치르다가 1912년 9월 13일 이른바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詔書)」 로 12월 14일 징역 7년으로 변경되었고, 1914년 5월 24일 이른바 「칙령(勅令) 제104호」 로 다시 징역 5년 8월로 바뀌었다. 이후 자세한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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