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선
金榮璿1878. 5. 4 ~ 1944. 5.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경학사
- · 신흥강습소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공아단
- · 북만경학연구회
- · 대종교
포상 정보
- · 애국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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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2) 1878년 5월 4일 경기도(현 황해북도) 장단군(長湍郡) 대강면(大江面) 독정리(篤正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백농(白濃)이며, 이명은 김영선(金榮璇)과 김영현(金榮賢)이다.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하여 1904년 9월 13일 육군 보병 부위(副尉)에서 정위(正尉)로 승진하였다. 1905년 2월 25일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에서 육군무관학교 교관에 임명되어 사관 양성에 종사하였다. 그 해 11월 18일에 교관에서 면직된 데 이어, 군대 해산 직전인 1907년 7월 26일 면관되었다.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서간도로 건너가 경학사와 신흥강습소에서 활동하였다. 서간도의 류허현(柳河縣) 싼위안푸(三源堡)에는 신민회 회원이 중심되어 독립군 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1911년 4월 자치단체인 경학사(耕學社)와 독립군 양성기관인 신흥강습소를 설치하였다. 정착 초기에는 중국인들이 이주 한인에게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이들과의 마찰과 갈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였다. 이를 위해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신흥강습소의 정예 학생들을 이끌고 류허현을 돌며 축하 무력 시위를 벌여 중국인의 호감을 사기도 하였다. 경학사는 1911년과 1912년 연이은 흉년과 국내에서 제공하기로 한 자금 루트가 봉쇄되면서 유지가 힘들어졌다. 1913년 3월 초에는 일제가 이동녕(李東寧)· 이회영(李會榮) 등을 암살하거나 붙잡으려고 형사대를 만주로 보냈으니 속히 피신하라는 비밀 연락이 국내에서 왔다. 이에 이동녕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新韓村)에 정착하여 이동녕을 비롯하여 엄인섭(嚴仁燮)·이범석(李範錫)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을 계기로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이 모여든 상하이(上海)로 갔다.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열린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에서 이광수(李光洙)가 군무차장에 추천하였으나 선거에서 조성환(曹成煥)이 당선되었다. 4월 23일 열린 제2회 임시의정원에서 차장제가 폐지되고 위원제로 전환되면서 조성환(曺成煥)·신철(申澈)·박숭병(朴崇秉)·김충일(金忠一)과 함께 군무위원에 선임되어 임시정부의 군사 업무에 종사하였다. 상하이에서 다시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으로 돌아와 1920년에 조영진(趙永晉)·강양오(姜良五)·이설(李卨) 등 12명으로 공아단(共啞團)이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어 활동하였다. 또한 의군단원인 사위 주홍익(朱弘翼)과 함께 체코 군인 또는 러시아군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여 독립군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1920년 1월, 2월, 4월 세 차례에 걸쳐 의군단 특파원 한상률(韓相律)의 부탁을 받고 무기를 구입하여 제공하였다. 그 해 6월 주홍익이 다시 러시아인에게 총 100정과 탄환 1,500발을 구입하려다가 발각되어 일본 헌병에게 붙잡힌 뒤, 청진으로 호송되어 1921년 4월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징역 2년을 받았다. 블라디보스토크 조선인민회 부회장 박병일(朴炳一)과 블라디보스토크 일본영사관 야마자키(山崎) 사무관을 통해 사위 주홍익을 석방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활동할 때 그곳 일본 영사관의 야마자키 사무관과의 관계 때문에 “일본 관헌에 출입한다는 악평”을 주변에서 들었고, 조영진·박병일·조장원(趙璋元)·김중화(金仲和)·최병주(崔炳周)·이상운(李尙雲) 등과 함께 친일파로 지목되어 암살 대상이 되기도 했다. 1922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닝안(寧安)현 하이린(海林)으로 이주하여 조선인민회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었다. 그 해 (음)6월 25일 부근 한인 약 60여 명을 모아 북만경학연구회(北滿耕學硏究會)를 조직하고 회장이 되어 한인의 지식 계몽과 산업 교육, 경제 발전 등에 노력하였다. 이 무렵 대종교 2대 교주 김교헌이 청산리전투 이후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대종교 총본사를 닝안현으로 옮기고 둥닝(東寧)현 및 닝안현 닝구타(寧古塔)을 중심으로 교세를 확장하자 해림대종교 시교당(施敎堂)의 주재원이 되어 80여 명의 신도들을 대상으로 포교 활동을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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