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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시만

姜時晩

1870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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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강시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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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陜川)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합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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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합천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1870년경 경상남도 합천군(陜川郡) 대양면(大陽面) 도리(道里)에서 태어났다. 합천군에서는 3월 18일 삼가면(三嘉面)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가 촉발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후 강홍렬(姜弘烈)·김영기(金永騏)·심재현(沈載現)·손득룡(孫得龍)·이용선(李龍善)·주경천(朱擎天)·추용만(秋鏞滿)·심재기(沈載祺) 등과 함께 대양면 대목리(大目里) 수암정(修巖亭)에서 모여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거사 일은 합천면 시장 장날인 3월 19일로 정하였다. 거사 당일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들고 장터로 잠입하였다. 장꾼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후 4시경, 5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불렀다. 선두에 서서 시위대와 함께 시장 주변을 행진하고 있을 때 경찰이 출동하여 심재기 외 16명을 검거하였다. 이들 구금자를 구출하기 위해 김영기·추용만·이용선 등 12명과 함께 자진해서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이튿날인 3월 20일 오후 7시경 주민 500여 명을 이끌고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합천면으로 행진을 시작하였다. 합천면에서는 각 면에서 몰려온 시위대와 함께 합천경찰서로 몰려가 구금자 석방을 요구하였다. 서장 이하 경찰들이 나와 군중이 먼저 해산하면 석방하겠다고 해산을 종용하며 압력을 가하였다. 하지만 시위대는 경찰이 공포탄을 발사해도 물러서지 않고 돌을 던졌다. 이에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김영기·추용만·김호준(金浩俊)과 함께 그 자리에서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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