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언
金永彦1896. 4. 22 ~ 1956. 3.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관련 사건
- · 영암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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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1) 1896년 4월 22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북일시면([(北一始面), 1931년 덕진면(德津面)으로 개칭] 용산리(龍山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당시 영암보통학교(靈岩普通學校)의 학생으로 영암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들은 영암보통학교 전직 교사 조극한(曺克煥)은 만세시위 도모에 나서 당시 영암보통학교 학생이었던 김민규(金敏奎)와 만세시위 준비에 나섰다. 3월 31일 김민규에게 시위계획을 듣고 다음날 김봉근(金奉根), 유인봉(柳寅奉), 나효균(羅孝均), 이종구(李鍾謳) 등 9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들과 함께 태극기 100여 장과 목면(木棉)으로 만든 대형 깃발 1개를 제작하였다. 4월 9일, 조극환에게 받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영암보통학교 기숙사로 가 유인봉, 나효균, 이종구 등 영암보통학교 학생 10여 명에게 시위계획을 알리고 다음날인 4월 10일 정오에 영암면 장터에서 만세시위에 동참한다는 약속을 받았다. 4월 10일 새벽, 한국인 교사가 기숙사에 숨겨두었던 태극기 등을 찾아내서 압수해 버렸다. 이에 시위계획이 무산될까 염려하여 김민규와 함께 조극환의 집에서 준비되어 있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 등의 인쇄물을 가져와, 이를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정오에는 장터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동문(東門)터에서 성내(城內)를 향해 시위행진을 전개하다가 출동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소위 출판법과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27일 대구복심법원이 기각함으로써 징역 8월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인 1923년 영암군 북일시면에 영보강습소(永保講習所)의 노동야학회 강사를 지냈다. 1935년 5월에는 덕진면(德津面) 협의원(協議員)에 당선되었다. 1936년 덕진공립보통학교(德津公立普通學校) 교사 증축 및 학급 연장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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