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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조

金永祚

1899. 9. 14 ~ 197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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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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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固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고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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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진주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2) 1899년 9월 14일 경상남도 고성군(固城郡)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경남 진주군 진주면 만세시위에서 악대로 참가하여 만세시위 행렬을 이끌었다. 1919년 3월 진주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김재화(金在華), 강달영(姜達永), 박진환(朴進煥)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3월 10일 「독립선언서」 와 격문을 인근 면에 배부하고 당시 사립 광림학교(光林學校)의 악대원으로 활동하다가 졸업한 천명옥(千命玉), 박성오(朴星午), 이영규(李永奎) 등에게 시위행렬의 선두에서 악기를 연주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이때 악대로서 참가함과 동시에 기독교회 교섭위원을 담당하여 시위에 참가할 사람을 모집하였다. 3월 18일 11시경 의거의 시작을 알리는 타종의 책임을 맡아 진주교회로 달려갔으나 뜻밖에 교회의 종이 철거되고 없었다. 대신 오후 1시경, 이영규가 비봉산(飛鳳山)에 올라가 불어대는 나팔소리를 신호로 3개 지역에 분산되어 있던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을 시작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선두에서 악대를 이끌었다가 붙잡혔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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