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金永祐1895. 4. 15 ~ 1926. 7.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광복회
- · 대한민국임시정부
- · 정오회
- · 대구노동공제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광복회 대구권총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경상북도 대구 출신이다. 본관은 분성(盆城)이다. 1895년 4월 15일 아버지 긍석(肯石) 김진만(金鎭萬)과 어머니 달성 서씨(達城徐氏) 서복(徐福) 사이에서 4남 6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성주 이씨(星州李氏) 이귀갑(李貴甲)과 결혼하여 아들로 김일식(金一植), 이식(二植) 형제를 두었다. 아버지 긍석 김진만은 죽재(竹齋) 서병오(徐丙五)의 문하에서 시서화(詩書畵)를 배운 화가였다. 김진만은 아우 김진우(金鎭禹)를 비롯한 정운일(鄭雲馹)·최병규(崔丙圭)·최준명(崔俊明)·이시영(李始榮)·김재열(金在烈)·권국필(權國弼), 그리고 서우순의 아들 서상준 등과 함께 대구 부호 서우순으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1916년 9월 대한광복회의 ‘대구권총사건(大邱拳銃事件)’을 주도하였다. 1917년 8월 대구복심법원에서 김진만은 징역 10년, 김진우는 징역 1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아들 김일식은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 학생 운동 및 사회 운동의 대표적 인물이었고, 해방 후 대구 지역 좌익 운동의 중심 인물이었다. 대구권총사건으로 형무소에 수감되어 옥고를 치르고 있던 아버지 김진만과 숙부 김진우의 옥바라지를 하며 젊어서부터 약종상(藥種商)으로 일하였다. 1920년 (음)12월 무렵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군사부(軍事部) 참사(參事) 황일청(黃一淸)의 연락을 받고 중국 펑톈(奉天)으로 건너갔다. 1921년 1월 2일 펑톈에서 황일청과 평북 선천(宣川) 출신 김현수(金鉉守) 등을 함께 만났다. 이때 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황일청의 뜻에 적극 동의하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국내에서 모집하기로 하였다. 같은 해 3월 7일 다시 황일청과 김현수를 만난 뒤,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원 자격으로 100원·500원·1,000원 권 등 세 종류의 공채증서 300여 장과 권총 1정, 탄환 12발을 소지하고 국내로 잠입하여 서울에서 경남 창원(昌原) 출신의 안준(安浚)을 만나 독립 자금 모집을 위한 대상과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4월 25일 파고다공원 주변에 있는 민갑식(閔甲植)의 집에서 김현수로부터 일제의 주요 시설을 폭파하기 위한 다이너마이트 27개, 뇌관 8개, 도화선 11개 등을 전달받는 등 서울 견지동(堅志洞)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4월 29일 경찰부에서 출장 온 고등경찰과 형사에게 붙잡혔다.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조사를 받고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및 총포 취체법 위반으로 기소되어 1921년 7월 9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받고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1924년 만기 출옥하였다. 1925년 봄 사상운동 단체 정오회(正午會)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926년 3월에는 대구 지역의 대표적인 노동운동 단체이며 사회운동 단체인 대구노동공제회(大邱勞動共濟會)에 가입하여 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6년 늑막염(肋膜炎)으로 4개월 동안 치료받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6년 7월 16일 사망하였다. 장례는 7월 21일 대구 지역 최초의 사회단체연합장으로 진행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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