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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永俊
永俊1867 ~ 1910
강원 금성(金城)의병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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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강원도 금성군(金城郡, 현 강원도 김화군) 북면(北面) 허기리(許基里) 출신이다. 1909년 재판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42세로, 1867년생으로 추정된다. 재판 당시 주소는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추전면(楸田面) 추곡리(楸谷里)였고, 직업은 백목상((白木商), 무명 장사)이었다. 이명은 김억석(金億石). 1907년 8월 을사늑약에 기인하는 ‘보호정치’에서 벗어나 독립 국가를 건설하고, 일본인의 국외 추방 등을 내세우며 강원도 평강군(平康郡)에서 거의하였다. 중군·우군·좌군·선봉 등의 각 부대를 만들고, 진동창의대장이 되어 무기·탄약·양식·피복 등을 모집하였다. 적게는 40~50명에서 많게는 600~700여 명의 의병을 인솔하고 강원도·황해도·함경도에서 일본군 수비대 및 헌병대와 여러 차례 교전하였다. 1909년 10월 23일 일본군 헌병대에 붙잡혀 1909년 12월 21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 강도죄」 로 교수형을 받고 항소하였다. 1910년 1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다시 상고하였다. 그러나 그 해 2월 15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형 집행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주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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