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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金永夏

1884. 5.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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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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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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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1)

관련 사건

  • · 미금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1) 1884년 5월 15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기 양주군 미금면(渼金面) 평내리(坪內里)에 거주하며 농업에 종사하였다. 3월 13~14일에 전개된 미금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3월 13일 밤 양주군 미금면 평내리의 구장이었던 이승익(李昇翼)은 마을 주민들을 주막 앞으로 불러 모았다. 이승익은 이 자리에서 만세시위를 저지할 목적으로 배포된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의 고유문(告諭文)을 낭독하였다. 이후 구장 이승익과 모여 있던 100여명의 주민들은 조선총독의 고유문을 무시하고 만세시위를 개시하였다. 이때 우보현(禹輔鉉)·이보영(李輔永)·정기섭(丁基燮)·이석준(李錫俊)과 함께 적극적으로 참여해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미금면을 행진하였다. 다음날인 3월 14일 오후 1시경 미금면 평내리 주민들은 다시금 주막 앞으로 모였다. 약 140명의 시위대는 고종의 무덤인 홍릉(洪陵)이 있는 금곡리(金谷里)를 향해 행진을 개시하였다. 금곡리로 가는 두 번째 고개에 이르렀을 때 일본 헌병에게 제지당하였으나 해산명령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때 일본 헌병이 해산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6월 28일 경성복심법원이 기각하였다. 다시 상고하여 8월 18일 고등법원에 의해 기각되어 판결이 확정되면서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최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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