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永浩
永浩1881. 2. 17 ~ 1941. 9. 2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금산군 복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81년 2월 17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복수면(福壽面) 수영리(壽永里)에서 태어나 고향 마을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금산군 복수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날 때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31일 정재철(鄭在轍), 오연구(吳然九) 및 수영리 주민들과 함께 같은 면 곡남리(谷南里) 도로 수리공사에 부역으로 동원되었다. 오후 2시 무렵 휴식 중에 정재철이 인근 대전(大田) 시장에서 목격한 만세시위 상황을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근처에 모여 있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를 제안하고 가장 먼저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오연구 등과 함께 독립만세를 따라 불렀고, 도로공사에 나와 있던 약 200여 명의 복수면 주민들도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이때 공사를 감독하던 헌병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시위대열은 점점 불어났으며, 곡남리의 유영준(兪英濬) 등은 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을 듣고 동참하여 종이로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같은 군 진산면(珍山面) 헌병주재소에서 헌병들이 급파되어 시위대가 강제 해산되고 일부 참가자들이 끌려갔다. 마을로 돌아와 그날 밤 민영필(閔泳弼)의 주막(酒幕)에서 정동권(鄭東權)으로 하여금 복수면에서도 다른 지역과 같이 만세운동을 일으키자는 내용의 통문(通文)을 작성하게 하였다. 또 이를 복구면 백암리(白岩里) 구장(區長)의 집에 보내어 운동 참가를 권유하였다. 오후 11시경에는 낮에 끌려간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주민 200여 명과 함께 진산면으로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일본 헌병의 출동으로 시위대는 해산되었고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고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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