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金永河미상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간도 대한국민회
- · 대한적십자회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위원군 화창면 주재소 공격
- · 위원군 봉산면 고각동 전투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함경남도 원산부(元山府) 출신이다. 일제의 「불령단 참의부(參議部)의 근황보고」 라는 보고문서에 의하면, 1926년 당시 21세로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1920년부터 활동 행적이 나오고 있어, 역산하면 15세부터 민족운동에 참여한 것이 된다. 가족관계와 성장과정 등은 자료의 한계 상 알기 어렵다. 1920년 북간도(北間島)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 제24지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 직후 옌지현(延吉縣) 국자가(局子街)에서 조직된 대한국민회는 북간도 최대의 독립운동 단체였다. 회장은 구춘선(具春先)이었고, 성립 초기에는 옌지현 하마탕(蛤蟆塘)에 본부를 설치하고 북간도 한인사회를 동·서·남·북·중 등 5개로 나누어 지방회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지방회 밑에 70개에 달하는 지회를 만들었다. 1년 후인 1920년경에는 하마탕 뿐 아니라 의란구(依蘭溝)에도 본부인 총부(總部)를 설치하고, 8개의 지방회와 130개에 달하는 지회를 설치하는 방대한 조직이 되었다. 1920년 10월에는 북간도 대한적십자회(大韓赤十字會)에 가입하였다. 대한제국 시기인 1905년 10월 설립된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는 경술국치(庚戌國恥)를 당하기 한 해전인 1909년 7월 일본의 강압에 의해 폐지되었다. 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난 뒤, 1919년 7월 13일 안창호(安昌浩)·이희경(李喜儆) 등이 주도하여 다시 만든 것이었다. 본부를 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上海)에 두고, 국내는 물론 간도·러시아·미국·멕시코·쿠바 등에 지부와 지회를 설치해 모금된 회비로 역경에 처한 동포들을 구제하였다. 서북간도에 이주한 한인들은 1920년 10월부터 큰 수난을 당하게 되었다. 이 지역에 근거지를 구축한 독립군들에게 큰 피해를 입은 일본이 약 2만 명에 이르는 일본군들을 서북간도 지역으로 침입시켜 경신참변(庚申慘變, 또는 간도참변[(間島慘變)])을 일으켰다.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은 독립군뿐만 아니라 일반 한인까지 보이는 대로 살상하고 붙잡았다. 그리고 한인의 가옥·학교·교회 등에 방화해 한인사회를 초토화하였다. 이듬해 4월까지 이어진 이 만행으로 3,700명에 이르는 한인이 살해되고 3,300채의 가옥과 학교 등이 파괴되었다. 이 같은 간도지역의 재난을 구제하기 위해 대한적십자회에서는 안정근(安定根)을 단장으로 한 구호단을 파견하였다. 간도에 도착한 구호단은 현지에서도 신규회원을 가입시켜 함께 구호활동을 벌였다. 이 때 적십자회 회원이 되어 간도에서 수난을 당한 동포들을 구제하다 그 해 12월경 고향인 원산으로 들어왔다. 고향에서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적십자회 가입을 권유하고 의연금을 모금하였다. 동시에 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과 간도지역 한인들의 참상을 알리는 격문 등도 함께 가지고 와 배포하였다. 이 같은 활동은 결국 일본 경찰에 포착되어 함께 활동하던 오희영(吳熙泳)과 함께 붙잡혔다. 함흥지방법원에 이어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일제의 혹심한 탄압을 받으며 옥고를 겪었지만 출옥 후 다시 만주로 갔다. 이번에는 압록강 건너 남만주(南滿洲)로 가 참의부에 가입하였다. 참의부는 1924년 중반 통의부(統義府)의용군 제1·2·3·5중대와 유격대 및 독립소대 소속원들이 이탈해 임시정부 직속 독립군단임을 천명하고 성립시킨 독립군단(獨立軍團)이었다. 한중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변인 지안현(輯安縣)에 본부를 설치하고, 그 주변지역인 린장(臨江)·환런(桓仁)·퉁화현(通化縣) 등에 독립군들을 배치하고 적극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참의부 제4중대에 2소대에 배치되어 상등병(上等兵)에 임명되었다. 1924년 7월 초, 제2분대장인 참사(參士) 김창균(金昌均)이 편성한 유격대에 김원철(金元喆)·양봉제(梁奉濟)·김택규(金澤奎)·신용섭(申龍涉)·김창옥(金昌玉)·이기섭(李基涉)·한영환(韓永煥) 등과 함께 대원이 되었다. 유격대는 압록강을 건너 평북 위원군(渭原郡)으로 진입하였다. 7월 3일 위원군 화창면(和昌面)에 진입한 유격대는 그곳 주재소를 기습 공격해 큰 피해를 입혔다. 9월 초 같은 군의 봉산면(鳳山面)으로 이동하던 유격대는 고각동(古閣洞)에서 일본 경찰대와 만나 대접전을 벌였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유격대는 대원 신용섭(申龍涉)이 전사한 상태에서 철수해 본대로 귀대하였다. 일제의 보고문서에 의하면 1926년 1월까지 참의부 상등병으로 활동하였음이 기록되어 있으나 이후 행적에 대한 자료의 한계로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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