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현
金玉現1878 ~ 1907. 12. 2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6) 전라북도 진안군(鎭安郡) 출신으로 기록에 따르면 1878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의병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6월 헤이그특사 사건 이후 광무황제(고종)는 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압력을 받아 7월 20일 융희황제(순종)에게 제위를 양위하였다. 이어서 7월 24일 이완용(李完用) 내각은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고 사법권과 경찰권을 통감부에 위임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을 일제와 체결하였다. 8월 1일부터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와 지방의 진위대(鎭衛隊)에 대한 해산 조치가 강행되자, 시위대 대대장 참령 박승환(朴昇煥)의 자결에 이은 시위대 제1, 제2대대의 저항,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무장 봉기 등 해산 군인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의병 항쟁이 시작되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동료 의병 6명과 함께 전라북도 장수군(長水郡)를 중심으로 군자금을 확보 활동에 나섰다. 당시 30세로 완력이 출중하여 동료 의병들로부터 지휘관으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매계동(梅溪洞)에 거주하는 박인석(朴仁石)의 신고로 1907년 12월 19일 장수군 천천면(天川面) 월천동(月川洞)에서 장수분파소(長水分派所) 소속 순사(巡査)들에게 붙잡혔다. 12월 21일 장수군에서 활동하던 또 다른 의병장 김동신(金東臣)이 이끄는 20여 명의 의병들이 장수분파소를 습격하여 붙잡힌 의병들을 구출하려 하였으나, 이 과정에서 순사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