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九
九1890. 2. 1 ~ 1963. 3. 2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8)
관련 사건
- · 구포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8) 1890년 2월 1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구포동(龜浦洞,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구포면에서는 1919년 3월 중순 구포 사람으로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이던 양봉근(楊奉根)이 고향으로 내려와서 구포면 서기 임봉래(林鳳來)를 만나 서울과 평양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하면서 거사 계획이 본격화되었다. 1919년 3월 27일과 28일 구포면 구포리의 만세운동에 뜻을 함께 하고자 한 사람들이 박영초(朴永初)·이수련(李守蓮) 집에 모여 회의를 거듭한 끝에, 구포 장날인 3월 29일을 거사일로 정하였다. 이들은 교대로 밤을 새워가면서 독립선언서와 소형 태극기 수백 매씩을 제작하였고, 대형 태극기와 ‘대한독립 만세’라고 쓴 깃발도 만들었다. 거사일인 3월 29일 정오 주도 인물들은 구포 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은 사람들은 구포 시장에 모여든 군중들에게 다시 독립선언서 와 태극기 등을 몰래 나누어 주는 한편 시장 문을 닫고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때 시위 군중의 선두에 나와서 태극기를 흔들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일본 경찰은 주도 인물 12명을 지목하여 붙잡아갔다. 이들의 구금 소식을 듣고 오후 3시경 시위 군중 1,200여 명과 함께 구금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구포주재소로 몰려갔다. 시위대와 함께 주먹과 곤봉으로 주재소 유리창과 의자를 파괴하고 구금된 이들을 구출하고자 하였으나 일본 경찰의 무자비한 발포로 해산하는 과정에서 붙잡혔다.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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