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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龍均

金均

1875. 1. 2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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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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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갑산(甲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갑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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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장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7) 1875년 1월 26일 함경남도 갑산군(甲山郡) 회린면(會麟面) 후지리(厚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갑산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 단천(端川)교구의 최봉천(崔鳳天)이 1919년 3월 9일 갑산군 장평면(長平面) 서부리(西部里)에 있는 천도교 갑산교구를 방문하면서 준비되었다. 최봉천은 3월 15일 만세시위를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8일 풍산군(豊山郡) 이인면(里仁面) 가재리(加財里)에 있는 천도교 분교실을 방문하고 온 최봉천은 3월 9일 밤에는 회린면 화장리(化墻里)의 정완조(鄭完朝)를 방문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러한 최봉천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만세시위가 준비되지 못하였다. 그 과정에서 갑산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은 천도교 갑산교구의 전교사(傳敎師)인 김명수(金明洙)였다. 김명수는 3월 11일 풍산군(豊山郡) 안산면(安山面) 하지경리(下地境里)의 천도교 교당으로부터 만세시위에 대한 서신을 받았다. 그러자 3월 12일 회린면 후지리에 있는 정국태(鄭國泰)의 집으로 가서 정수웅(鄭秀雄) 등과 함께 갑산의 만세시위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들은 3월 15일 천도교 갑산교구 교당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15일 오후 2시경 천도교 갑산교구 교당에는 200여 명의 천도교인들이 모였다. 이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태극기를 앞세우고 군청으로 향하였다. 헌병들이 시위대를 저지하려 하였지만, 시위대는 군청으로 진입하였다. 이에 급보를 받고 출동한 장교 이하 12명의 혜산진(惠山鎭) 수비대는 경찰과 합세하여 시위대를 강제로 해산시켰다. 그 날 밤부터 주도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진행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8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종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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