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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

金用福

189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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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용복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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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순천(順川)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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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애국부인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3) 평안남도 순천군(順川郡) 풍산면(豐山面) 용문리(龍文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90년에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부인회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당시 평양 숭현여학교 교사로서 교육 활동에 주력하였다. 숭현여학교는 장로교 계통의 학교로 만세운동 당시 숭덕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한 곳이었다. 1919년 11월 평양에서 북장로파 반장이던 한영신(韓永信), 대동군(大同郡) 정명여학교 교사 김보원(金寶源)·김신희(金信喜) 등과 함께 애국부인회(愛國婦人會)를 조직하였다. 본래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결성된 애국부인회는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집, 임시정부의 선전 활동 등을 전개하며 평안도 일대의 장로파 교인들을 중심으로 조직을 확대해 갔다. 한편 평양에서는 장로파를 중심한 애국부인회 외에도 감리파를 중심으로 생겨난 애국부인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이들 감리파와 장로파의 여성 조직들은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김정목(金貞穆)과 김순일(金淳一)의 권고로 1919년 11월 평양 신양리의 김경희(金景喜) 집에서 모임을 갖고 통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대한애국부인회(大韓愛國婦人會)가 조직되었다. 이때 대한애국부인회 회원으로서 회원들과 함께 금반지·금비녀 등의 패물들을 팔고 삯바느질을 하여 모은 돈 2,400여 만원을 임시정부로 송금하였다. 아울러 여러 차례에 걸쳐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여 보냈으며, 국내에 들어와서 활동하는 독립군에게 은닉할 장소를 마련해 주기도 하였다. 대한애국부인회는 평안도 각지에 지부를 설치하였다. 가입한 지부는 평양감리교·평양장로교·진남포감리교·진남포장로교·강서감리교·함종감리교·증산감리교·순천장로교 등 8개소였다. 지부는 새로 조직된 단체가 아니라 기존 지방부인회를 지회로서 흡수한 것이었다. 회원은 100여 명이었다. 대한애국부인회도 대한애국부인회본부와 마찬가지로 적십자부를 두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즉각적으로 전장에 투입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다. 이와 같은 활동이 일제에 적발된 것은 증산지부의 군자금 모금 사실이 탄로나 증산지부장 송성겸(宋聖謙)이 체포되면서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평안남도에서 관련자 106명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1920년 10월 15일 진남포 검사국에 송치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1심에서 징역 2년 6월을 받자, 불복하고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1년 2월 24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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