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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溫順

溫順

1898 ~ 1968.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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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溫順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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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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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신한농민당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98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있다. 호는 혜사(慧史)이다. 평양 숭의여중(崇義女中)을 졸업하였고, 독립운동가 김광희金光熙와 결혼하였다. 1919년 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고,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가 해주 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남편과 함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Владивостк)로 망명하였다가 중국 상하이(上海)로 이동하였다. 1919년 7월에는 다시 연해주(沿海州)로 건너가 농장과 학교를 설립하였다. 1920년대 후반 상하이와 만주에서 조직된 여러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통합 논의가 시작되었다. 정의부(正義府)를 중심으로 1928년 5월 12일 ‘전민족유일당조직촉성회의’가 개최되었고, 이 때 기존 단체 중심의 통합을 주장하는 ‘협의회’(協議會) 측과 개인을 중심으로 단체를 새로 조직하는 ‘촉성회’(促成會) 측으로 대립하였으며, 단체 통합은 끝내 결렬되었다. 이에 정의부의 지청천(池靑天)·김동삼(金東三), 참의부(參議府)의 김승학(金承學), 신민부(新民府)의 김좌진(金佐鎭) 등이 포함된 촉성회 측은 같은 해 12월 혁신의회(革新議會)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좌우합작의 성격을 띠던 단체 안에서 공산주의자들과의 분쟁을 겪은 후, 신민부 군정파는 북만주로 돌아가 재만조선무정부주의자연맹(在滿朝鮮無政府主義者聯盟)과 결합하여 1929년 7월 한족총연합회(韓族總聯合會)를 결성하고, 본부를 만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닝안현(寧安縣)에 두었다. 한족총연합회는 기존 대종교(大倧敎)의 색채를 벗고 무정부주의와 반공주의를 천명하였으며, 농촌자치조직 건설·교육활동·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후 1930년 1월 20일 한족총연합회의 주석인 김좌진이 공산주의자에게 피살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공격에 맞서 독립운동 노선을 재정비하기 위해 한족총연합회의 지도당으로 신한농민당(新韓農民黨)이 결성되었다. 이때 남편인 김광희가 신한농민당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었고, 여성부장을 맡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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