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규
金用奎1906 ~ 1925. 7. 1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황청동사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평안북도 강계군(江界郡) 어뢰면(漁雷面) 황추리(黃楸里)에서 태어났다. 『독립신문』의 「낭림대(狼林隊) 출정(出征)의 전보(戰報)」 라는 기사에서 사망 당시 나이가 19세로 기록되어 있어, 190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에서 참의부(參議府)의 제1소대 낭림대 이등병으로 활동하다가 일본군에게 희생되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일명 (參議府))에 참여하여 대일 항전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참의부는 1924년 만주 지안현(輯安縣)에서 조직된 임시정부 소속의 독립군 단체였다. 전신은 1922년 성립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일명 (統義府))로 서간도 최초의 통합 독립군 단체였다. 일본군은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에서 패배하자 1920년 10월 간도 일대에서 무고한 한인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학살을 자행한 경신참변(庚申慘變)을 일으켰다. 만주지역 독립군 단체들은 일제의 보복을 피해 러시아 지역 등으로 피신했다가, 이후 다시 만주지역으로 진출하였다. 봉오동전투 이후 북간도 독립군 단체들은 통합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움직임과 동시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북간도 독립군의 통합을 위해 안정근(安定根)과 왕삼덕(王三德) 등을 특파원으로 임명하여 북간도의 각 단체에 파견하였다. 이에 따라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보합단(普合團)·광한단(光韓團)·광복군 총영 등이 하나로 모여, 1922년 대한통의부로 통합되었다. 연해주의 자유시 참변, 임시정부의 국민대표회 혼란, 만주 지역 한인사회 내의 여러 문제 등으로 1923년 대한통의부와는 별도로 참의부가 1924년 정식 창립되었다. 참의부는 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와 함께 3부로 불리며 남만주 퉁화(通化)·지안(輯安) 등지를 중심으로 압록강 연변 일대를 관할하였다. 참의부는 성립 초기부터 국내 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대표적인 참의부의 독립군 부대로는 낭림대(狼林隊)와 관서대(寬西隊)에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압록강 변경지대를 중심으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동시에 일대 한인사회를 관리하면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당시 참의부 제1소대 낭림대에 소속되어 소대장 장창헌(張昌憲)의 지휘 아래 항일 운동에 참여하였다. 1925년 7월 13일 장헌창의 인솔 아래 참사(參士) 이정빈(李晸斌)·일등병(一等兵) 이춘화(李春化)·이용연(李用淵)·박지숙(朴支淑) 및 이등병(二等兵) 석종성(石鍾聲) 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강계군(江界郡) 종서면(從西面) 황정동(黃淸洞)에서 밀정 홍인화(洪仁化)의 속임수에 빠져 일본 경찰의 습격을 받았다. 이때 소대장 장창헌 등과 함께 현장에서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