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用吉
用吉미상 ~ 미상
포상 정보
- · 애족장(2000)
관련 사건
- · 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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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0) 생몰연도와 출신지역은 알 수 없다. 의병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사형을 당하였다. 1896년 1월 안승우(安承禹), 이춘영(李春永) 등이 토적복수(討賊復讐)를 기치로 강원도 원주에서 거의한 후 유인석(柳麟錫)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제천에서 진용을 재편성할 때 포군(砲軍)으로 참가하였다. 안승우가 경기도 지평군(砥平郡)에서 거의할 때부터 참가했는지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지평군에서 600명의 포군이 김백선을 따랐다는 기록을 통해 지평의 포군 출신이 아니었던가 추측된다. 충청북도 제천에서 결성한 유인석 의병부대는 총대장 유인석, 중군 이춘영, 전군장 안승우, 후군장 신지수, 선봉장 김백선, 조련장 안성해, 참모 박주순, 사객 장충식, 종사 이조승·홍선표·이기진·정화용 등으로 진용을 이루었다. 병사의 수도 1만여 명에 달하였다. 제천의진은 1896년 2월 충주성을 점령해 기세를 떨쳤다. 충주는 중원지역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지리적으로도 전략상 요충지였다. 이어 제천의진은 여세를 몰아 일본군 수비대가 주둔하는 수안보와 가흥(佳興)을 선제 공격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역습으로 의병부대는 패퇴하기에 이르렀고, 충주성에서도 퇴각하였다. 일단 단양에서 진영을 정비한 의병부대는 원주를 거쳐 영월·평창·정선 등지를 경유해 평안도 방면으로 북상하였다. 의병부대의 북상은 중국 요동 방면에서 장기 항전의 기틀을 마련한다는 목표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제천의진은 1896년 6월 평안북도의 양덕(陽德)·맹산(孟山)·희천(熙川)·강계(江界) 등지를 지나 압록강 초산에 도착할 때까지 곳곳에서 처절한 혈전을 겪어야 하였다. 이 과정에서 1896년 7월 강계에서 일본군 의병 진압 부대의 기습 공격을 받고 붙잡혀 사형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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