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用玉
用玉1880. 6. 25 ~ 1924. 3.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청양군 화성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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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80년 6월 2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화성면(化城面) 수정리(水汀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청양군 화성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청양군 화성면에서는 박공삼(朴公三)·조남희(趙南熙)의 주도로 면소재지인 산정리(山亭里)를 중심으로 1919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에 걸쳐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5일 박공삼과 조남희는 조경희(趙景熙)·김정봉(金正鳳)·김종문(金鍾文)·박태선(朴泰善) 등 산정리 주민 20여 명과 함께 정자동에 태극기 2기를 세워놓고 큰 종을 울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4월 6일, 박공삼, 조남희 등은 전날 시위에 참여한 산정리 주민들과 함께 오전 10시 쯤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이 시기 화성면사무소는 증축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박공삼은 공사 중인 인부들에게 “조선은 이미 독립하였기 때문에 증축 공사는 필요치 않다”는 취지로 압박하여 공사를 중단시켰다. 이와 함께 박공삼은 시위대를 지휘하여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면서, 이미 공사가 끝난 시설을 파괴하는 격렬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어 4월 7일에는 농암리(農岩里)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때 화성면에서 예산군(禮山郡) 방향으로 여러 산을 끼고 연결된 농암리(農岩里)·화암리(花岩里)·수정리 등의 마을 주민 70여 명과 함께 만세시위에 동참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만세시위는 주도자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산정리의 맞은편 북쪽 골짜기인 농암리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한 것으로 보아 직전에 박공삼, 조남희 등이 산정리에서 주도한 만세시위에 자극받아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청양헌병분견소로 끌려가 조사받은 후, 4월 25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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