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伊
伊1891. 1. 1 ~ 1919. 4.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김해군 장유면 무계리(4.12)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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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1) 1891년 1월 1일 경상남도 김해(金海) 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 김해군 장유면 무계리 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장유면(長有面)의 만세운동은 1919년 2월 하순경 상경하였다가 파고다공원의 독립선언식과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 를 가지고 귀향한 김종훤(金鍾烜)을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1919년 4월 11일 김종훤은 김승태(金升泰)·조순규(趙順奎)·이강석(李康奭)·최현호(崔鉉浩) 등과 장유면 신문리(新文里) 외딴 집에서 만나, 이튿날 무계리(茂溪里)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각자 자기 동민들의 동원과 태극기의 제작을 책임, 분담하였다. 주도 인물들이 각기 동리로 돌아가 크고 작은 태극기를 제작하고 의거계획을 알리자, 주민들이 거사를 지지하고 나섰다. 1919년 4월 12일 주민 50여 명을 동원한 김승태가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서서 무계리 장터로 들어오는 것을 시작으로 다른 동리에서도 주도 인물들의 인솔아래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장터에 모여들어 시위 군중은 3,000여 명이나 되었다. 정오 무렵 김종훤의 「독립선언서」 낭독을 신호로 무계리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대는 독립만세를 외치며 북을 치고 농악용 나팔을 불면서 거리 행진에 나섰다. 이에 호응하여 장터에서 시위 대열에 참여하여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시위행진을 함께하였다. 이때 일본 군경이 출동하여 무력을 행사하자, 시위 군중과 함께 헌병주재소를 습격하였다. 그러나 당황한 일본 헌병의 무차별 사격으로 손명조(孫明祚)·김선오(金善午)와 함께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슬픔과 분노를 참지 못한 시위 군중은 재차 일본 헌병주재소를 포위한 후 투석과 몽둥이로 그 건물을 파괴하고, 헌병 상등병과 보조원을 때려눕혀 중경상을 입혔다. 그러나 김해읍에서 응원 출동한 일본 군경의 발포로 10여 명이 붙잡히고 시위 대열은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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