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成
成1911. 8. 3 ~ 1943. 8.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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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9) 1911년 (음)8월 3일 전라북도 익산군(益山郡) 북일면(北一面) 현영리(玄永里)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김용성(金容成)으로 표기되기도 하였으며, 창씨명은 금본용성(金本龍成)이다. 9세 때부터 4년간 고향의 사립학교에서 수학하고, 이후 전북 김제군(金堤郡) 백산면(白山面) 상리(上里)에 거주하면서 부용공립보통학교(芙蓉公立報通學校)에 다녔다. 6학년 재학 중 가정 형편으로 인해 학교를 중퇴하고 농업에 종사하였다. 그 즈음부터 같은 마을의 민족주의자 안영묵(安榮黙)으로부터 감화를 받고 민족의식을 갖게 되었다. 안영묵의 지도로 1926년경부터 김제청년동맹(金堤靑年同盟)을 비롯한 김제 지역의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경 안영묵이 조직한 김제청년동맹 백산지부(白山支部)에 가입하였고, 이후 김제에서 농민조합을 조직하는 등 활발한 사회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1928년 안영묵이 대한독립통의부(大韓獨立統義府) 단원(團員) 사건에 연루되어 이리경찰서에 붙잡히자 잠시 운동의 소강상태를 맞았다. 1930년 안영묵이 출옥한 후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운동에 참여하였다. 이때부터는 안영묵의 권유로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자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여 한국의 독립과 신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당시 같은 마을의 친구 정인화(鄭寅樺)·홍길동(洪吉童)이 각각 그곳에서 야학교를 설립하여 청년과 아동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를 활용하여 1930년 9월부터 불합리한 사회제도의 파괴와 공산주의제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이들을 동지로 규합하여 야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자 하였다. 또 1932년 4월에는 익산군 오산면(五山面) 영만리(永萬里)에 살던 송왕식(宋王植) 집으로 가서 같은 내용을 설명하고 함께 활동할 것을 권유하는 등 활발히 동지 규합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33년 1월 16일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른 후 같은 해 9월 출옥하였다. 1943년 8월 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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