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인
金容寅1915. 2. 5 ~ 193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독서회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0)
관련 사건
- · 고창 농민독서회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0) 1915년 2월 5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무장면(茂長面) 무장리(茂長里)에서 태어났다. 1921년 무장공립보통학교(茂長公立報通學校)에 입학하였으나, 가정형편으로 상급 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고향에서 과일 장사를 하였다. 1933년경부터 친척 김명환(金明桓)과 교류하면서 감화되어 사회주의 사상에 공감하고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명환은 전주공립보통학교(全州公立報通學校)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의 사립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다니다가 귀국하여 1928년 6월 고창청년동맹(高敞靑年同盟)의 창립에 관계하고 이후 정치문화부 위원, 집행위원장 등으로 활동하였다. 1934년 9월 중순경 같은 무장리의 김명환 집에서 김명환·강학수(姜鶴秀)·이은숙(李殷淑)·김용호(金容浩)·조자현(曺慈鉉) 등과 모여 사회주의 연구 등을 위한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고 이후 매주 2회 정도 모임을 가졌다. 같은 해 11월에는 김용호와 만나 소년들을 모아 교양할 필요가 있다고 협의하고 이를 위해 같은 마을의 진차봉(陳次奉)·정인숙(鄭仁淑)·김우상(金友尙)·김영우(金寧禹)·김연술(金演述)·조중원(趙中元)·전준천(全駿千) 등 다수의 소년들을 규합하여 무산자 자제들의 단결 등을 강조하였다. 이들과 함께 농민소년부(農民少年部)라는 결사를 조직하고, 그 내에 서무반·문예반·선전반·돌격대 등의 부서를 설치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소년들과 회합하여 「사회주의 대의」 라는 팸플릿 등을 중심으로 가르쳤다. 1935년 2월에는 조자현·김용태(金容泰)와 함께 함남 함주군(咸州郡) 흥남읍(興南邑) 방면으로 날품팔이로 일하러 갔다. 이때 김명환으로부터 그 지역의 노동자들을 동지로 규합하라는 독려를 받고, 그곳에서 노동자 박병엽(朴炳燁)·손동락(孫東洛)·문지환(文智煥)·위정운(魏定雲) 등을 규합하였다. 이후 이들과 회합하여 독서회를 조직하고 서로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5년 4월경 정읍경찰서에 활동이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9개월 동안 조사를 받고 1935년 12월 10일 김명환 등 7명과 함께 전주지방법원 정읍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6년 4월 8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다음날인 4월 9일 전주형무소에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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