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봉
金龍鳳1898. 2. 22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통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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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5) 1898년 2월 22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광평면(廣坪面) 청성동(淸城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용방(金龍邦), 김여균(金麗均)으로 만주에서 활동할 당시에는 중국 펑청현(鳳城縣)에 거주하고 있었다. 1922년 (음)12월 초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통의부)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22년 8월 펑톈성(奉天城) 환런현(桓仁縣) 마권자(馬圈子)에서 결성된 통의부는 남만주에서 활동하던 주요 항일단체와 독립군단이 통합한 군정부였다. 통의부는 중앙조직으로 총장 아래 민사·교섭·군사·재무·학무·법무·교통·실업 등의 부서를 두고 남만주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 마을을 바탕으로 지방조직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군사조직으로 통의부 결성에 참여한 각 독립군단의 대원들을 통합하여 1개 대대 아래 5개 중대와 독립중대인 유격대 및 헌병대의 7개 중대의 의용군으로 재편성하였다. 통의부는 남만주 한인을 바탕으로 자치활동을 하면서 의용군을 남만주 각지와 국내로 보내어 친일 밀정을 처단하고 일제를 대상으로 국내 진공작전을 벌이는 등의 항일활동을 벌였다. 1923년 2월 6일 밤 11시경 오동규(吳東奎)·김원기(金基元)·조시언(趙始彦)·김정명(金貞明) 등과 함께 권총을 휴대하고 압록강을 건넜다. 자신의 본적지인 평안북도 의주군 광평면(廣坪面) 청성동(淸城洞)에 들어와 그곳에 있는 제암주재소(啼岩駐在所)를 습격하였다. 일본 순사와 약 30분 동안 총격전을 벌인 뒤 다시 강을 건너 관톈현(寬甸縣) 고루자(古樓子) 방면으로 돌아갔다. 1924년 (음)1월 20일경 오동규·이용규(李龍奎)와 함께 다시 압록강을 건넜다. 의주군 가산면(加山面) 방산동(方山洞) 김진기(金珍基)의 집을 습격하여 오동규와 같이 집밖에서 망을 보고 이용구가 방안에 들어가 군자금 50원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4년 11월 24일 화톈현(樺甸縣)에서 통의부는 대한광정단·대한독립단·의성단·노동친목회 등의 대표와 전만통일회(全滿統一會)를 개최하고 새로운 통합 독립군단으로 정의부를 결성하였다. 이에 정의부 의용군에 편성되어 1925년 의용군 부사(副士) 겸 관서(寬西) 주둔 보안대장으로 활동하였다. 그 해 (음)5월 20일 오동규·김춘산(金春山) 등과 같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군 가산면 방산동 서화룡(徐和龍)의 집에 가서 오동규·김춘산과 함께 집밖에서 망을 보는 동안 다른 동지 2명이 방안으로 들어가 군자금 50원을 모집하였다. 1925년 전후 같은 방법으로 7곳에서 많은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 후 관톈현에서 활동하며 중국 관헌과 수시로 교전하면서 팔에 부상까지 당한 일도 있었다. 1931년 12월 2일 펑청현(鳳城縣)에서 일제 경찰에게 붙잡혀 신의주경찰서로 이송되었다. 1932년 12월 1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및 강도죄 등으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33년 2월 6일 기각되었다. 옥고를 치르다 1937년 8월 31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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