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욱
金容旭1869. 3. 6 ~ 1921. 8.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신돌석)
- · 후기의병(신돌석)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69년 3월 6일 강원도 울진군(蔚珍郡, 현 경북 울진군) 근남면(近南面) 노음리(老音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치언(致彦). 1906년 4월 신돌석(申乭石) 의병장이 경북 영해(寧海)에서 의거할 때 중군장(中軍將)으로 참가하였다. 전기의병 당시 소년 의병으로 이름을 떨쳤던 신돌석이 10년 만에 의병을 재기한 것이었다. 신돌석은 전기의병 때 유림 의병들과 연대를 이루었으나, 중기의병 때는 주로 평민의병을 중심으로 전투력을 강화하면서 여러 차례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이런 신돌석의 용맹을 알고 자원해서 중군장을 맡았다. 당시 의병들 사이에서 신돌석의 용맹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었지만, 반상(班常)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유림 의병들에게는 꺼리는 존재였던 것이 사실이다. ‘치언’(致彦)이라는 호를 지닌 것으로 보아 유림 출신으로 여겨지는데, 또 신돌석과는 연배가 10년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그 휘하에서 중군장으로 활동한 사실이 주목된다. 신돌석 의병은 울진군에서 일본 선박을 여러 척 격침시킨 전투를 비롯해 강원도 동해안 일대, 경상북도 내륙 지방, 원주 등 강원 내륙 지방까지 활동 무대를 넓혀 나갔다. 신돌석을 두고 ‘태백산 호랑이’라 부른 것은 이때의 전공(戰功)으로 붙여진 것이었다. 신돌석과 함께 1906년 장호관(長湖館) 전투를 비롯해 1907년 울진 지방에서 일본군과의 접전, 1908년 울진·삼척·안동·예천·순흥 등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신돌석 의병의 특징은 관군이나 일본군과 정면충돌을 피하며 유격전으로 승리를 이끄는 전략 전술이 뛰어난 점에 있었다. 때문에 일본군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허다하였다. 그러나 신돌석이 1908년 12월 영덕의 눌곡(訥谷)에서 옛 부하인 김상렬(金相烈) 형제에 의해 독살 당하자, 나머지 의병을 이끌고 활동을 지속해 나갔다. 이후 은둔 생활로 영위하다가 1921년 8월 9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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