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제
金用濟1893. 8. 28 ~ 1974. 6.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홍성군 장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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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3)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 출신이다. 1893년 8월 28일 출생하였다. 1919년 4월 7~8일 장곡면의 만세시위와 면사무소 습격을 주도하였다. 홍성군 장곡면의 만세운동은 1919년 4월 4일 윤형중(尹衡重)·윤익중(尹益重), (世重)·윤낙중(尹樂重) 3형제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서울에서 유학 중이던 윤익중과 윤낙중은 3월 1일 탑골공원의 독립선언(獨立宣言)에 참가하여 만세운동을 전개한 후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목적으로 3월 20일 「독립선언서」 100매를 가지고 귀향하였다. 윤씨 형제들은 가족과 마을주민들이 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하여 4월 4일 화계리, 광성리(廣城里), 신풍리(新豊里)의 주민 100여 명과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로부터 영향을 받아 4월 7일과 8일 이틀간 가송리(佳松里) 김동하(金東河), (東化)를 중심으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김동완(金東完)·김용숙(金容肅)·이화춘(李化春)·김차제(金次濟)·한상철(韓相喆)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7일 같은 마을인 화계리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며 마을 앞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면사무소 소재지인 도산리(道山里)로 행진하였다. 광성리·가송리 등의 주민들과 합류하여 면사무소의 뒷산인 응봉산(鷹峰山)에 올라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한상철이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문의 취지를 설명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북을 치면서 호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규탄 집회를 마친 뒤 늦은 밤이었으나, 김동하의 지휘에 따라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김동하가 “면사무소 직원이 한명도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노하여 면사무소를 부수라고 외치며 선두에서 돌을 던지기 시작하자 김동완·김용숙·이화춘·김차제·한상철 등과 함께 뒤따라 투석(投石)하였다. 이에 다른 주민들도 돌과 몽둥이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유리창을 깨뜨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 기물, 문서 등을 파괴하였다. 다음날인 8일 밤 11시 전날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 학생 등 60여 명과 함께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였다. 이 날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30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를 이유로 징역 6월에 벌금 30엔 및 노역장 유치 30일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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