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龍俊
金俊1896. 11. 10 ~ 1926. 11. 1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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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96년 11월 10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송내동(松內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의성군 점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성군의 만세운동은 3월 12일 비안면(比安面)에서 시작된 후 23일 동안 7개 면에서 21차례 일어났다. 이 중 점곡면 만세시위는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5일 안평면(安平面) 대사동(大司洞)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뒤, 점곡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3월 18일 점곡면과 인접한 의성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김태호(金太鎬)·김점득(金占得)·김수석(金壽錫)·김유경(金酉庚)·김기호(金基鎬)·김구종(金九鍾) 등은 당일로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정하고 사촌동(沙村洞) 앞길에서 사람들을 모았다. 밤 9시경부터 11시경까지 이곳에 모인 30~40명의 주민들은 김태호의 주도 하에 점곡면에서 첫 번째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열기는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3월 19일 이른 아침부터 200여 명의 주민들이 사촌동 앞길에 모여 점곡면 주재소로 진입을 시도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윤암동의 남승순(南勝淳) 등은 23명의 마을 주민들과 함께 사촌동의 시위 군중에 합류하였다. 밤 9시경이 되자 사촌동 거리에는 사촌동·서변동·윤암동·송내동 등지에서 모여든 500여 명의 군중이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몰려갔다. 시위대가 주재소로 가는 것을 보고, 같은 마을 주민인 신주칠(申周七)·마갑문(馬甲文)·박천수(朴千壽) 등과 함께 이날 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에는 김학배(金鶴培)·김수배(金壽培)·김부문(金富文) 등 송내동 교회의 교인들도 전날보다 많이 참석하였다. 이들은 모두 김해 김씨 가문이었다. 이처럼 송내동 교회의 교인들과 안동 김씨, 영양 남씨 가문의 유림이 모두 참여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월 20일 새벽 1시경까지 이어지던 시위는 경찰의 위협 발포에 의해 해산되었다. 20여 명이 끌려가는 상황 속에서도 검거를 피해 그날 밤 10시 다시 한 번 만세시위를 일으키는데 성공하였지만 곧 붙잡히고 말았다. 1919년 5월 23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26년 11월 11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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