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鎬
容鎬1853. 8. 28 ~ 1924. 12.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3)
관련 사건
- · 제1차 유림단 사건(파리장서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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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3)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자는 원거(元琚), 호는 일암(一菴)이며, 이명으로는 용우(容又), 용순(容淳), 용문(容文)이라고도 하였다. 1853년 (음)8월 28일 경상북도 달성군(達成郡) 다사읍(多斯邑) 매곡리(梅谷里)에서 태어났다. 문민공(文愍公)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의 후예이다. 성장하면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가학을 잇는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과 심석재(心石齋) 송병순(宋秉珣) 형제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영남지역에서는 유림대표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장석영(張錫英)·송준필(宋浚弼) 등이 중심이 되어 파리평화회의에 「독립청원서(獨立請願書)」 를 제출하여 한국의 독립을 세계 각국에 호소하려는 독립청원운동, 일명 파리장서운동(巴里長書運動)을 추진하였다. 「파리장서」 는 제1차 세계대전의 뒤처리를 위해 열리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 유림단(儒林團)이 보낸 장문(長文)의 편지였다. 주요 내용은 일본이 저지른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와 광무황제(고종)의 강제 퇴위 및 일제의 한국 불법 강점 과정을 국제사회에 폭로하고 한국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한 것이다. 「파리장서」 는 곽종석을 비롯한 영남유림 대표와 김복한(金福漢)을 비롯한 기호유림(畿湖儒林) 대표 등 모두 137명의 명의로 작성 발송되었다. 이때 영남유림이지만 기호학맥(畿湖學脈)을 잇는 연재학파(淵齋學派)의 유학자로서 서명에 참여하였다. 파리장서운동은 1919년 4월 경북 성주(星州)지역 만세운동 과정에서 일본경찰에 의해 탐지되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많은 서명자와 관련자가 붙잡혀 조사를 받았다. 그 결과 즉시 풀려난 경우도 있었으나 검사국으로 넘겨져 재판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재판결과는 대부분 집행유예 또는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리고 아예 붙잡히지 않은 인사들도 많았다. 일제 사법부가 이들을 만세운동 참여자들과는 달리 관대하게 처분했던 이유는 이들이 민중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유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을 악화시키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었다. 파리장서운동 당시 서명자로서의 구속은 모면하였지만 그 뒤에도 계속 일본 경찰의 감시를 받았다. 결국 자유롭지 못한 삶 속에서 1924년 12월 30일 7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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