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用才

用才

1900 ~ 1928. 9. 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用才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참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출신이다. 일제측 자료에 의하면 190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어릴 때는 희천군 서면(西面) 극성리(克城里)에 거주하다가, 소백산의 정안동(定安洞)으로 거처를 옮긴 뒤 석탄을 캐며 부모를 모셨다. 이후 서간도로 이주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육군주만참의부(參議府)에 가입하였다. 1928년 사망할 때까지 군자금 모금 활동 등을 펼쳤다. 참의부는 남만주에서 성립된 무장독립단체로, 1922년 8월 만주에서 결성된 독립군 연합단체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에서 활동하던 의용군 일부가 상하이(上海)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을 도모하면서 새롭게 조직된 단체이다. 『독립신문』에 따르면 참의부는 1924년 4월 24일부터 7월 16일까지 약 3개월간 대략 20회에 걸쳐 국내 진격 작전을 수행하였다. 주요 활동 무대는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초산군(楚山郡)·강계군(江界郡)·영변군(寧邊郡)·용천군(龍川郡) 등이었다. 참의부에서 활동하다가 국내로 돌아와 소백산에 머무르며 김찬섭(金燦涉)·김의엽(金義葉)·김율녀(金栗女) 등과 함께 비밀 단체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27년 5월부터 1928년 6월경까지 약 16회에 걸쳐 단양(丹陽)·영월(寧越)·영주(榮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이 지역 외에 충청·전라·경상 지역을 오가며 군자금을 수집하여 일본 경찰의 체포 대상이 되었다. 1927년 12월 4일, 일제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경상북도 순흥(順興)의 배점(裵店)으로 가서 김율녀의 집에서 은거하였다. 같은 달 8일, 석륜사(石崙寺)에 있던 김찬섭·김의엽 등 세 명이 일본 경찰에게 붙잡혀 청주로 압송되었으나, 다행히 행방이 알려지지 않아 감시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928년 6월 9일 보발(寶發)로 이동하였으며, 지역 유지였던 박이술(朴利述)·원용갑(元容甲)에게 군자금을 요구하였다. 이후 김현구(金顯九)·박경화(朴敬化)·조군옥(趙君玉) 등 세 명을 붙잡아 조사하던 일본 경찰들에 의해 소재지가 알려지게 되었다. 100여 명의 경관이 네 부대로 나누어 소백산을 수색하였다. 1928년 9월 9일, 형제봉(兄弟峯) 인근에서 숨어 있다가 김두배(金斗培)와 함께 발각되어 일본 경찰에 저항하며 총격전을 벌이다가 총을 맞고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