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用澤
用澤1905 ~ 1929.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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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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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1905년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의주면(義州面) 원화동(元化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천(金泉)·김성발(金聲發)이다. 세 살 되던 해에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양부모에 의해 성장하였다. 고향에서의 생활이 빈곤하여 만 19세이던 1924년 가족 모두와 함께 남만주(南滿洲)의 리우허현(柳河縣) 고산자(孤山子)로 이주하였다. 약 1년여 간 생활의 방편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듬해 6월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하였다. 화성의숙은 정의부(正義府)가 설립한 민족학교 겸 독립군 양성기관이었다. 정의부는 1924년 11월 24일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광정단(光正團)·의성단(義成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고본계(固本契)·노동친목회(勞動親睦會)·잡륜자치회(卡倫自治會) 등 8개 단체가 통합해 성립된 독립운동단체였다. 하얼빈에서 액목(額穆), 북간도(北間島)까지 선을 그어 그 이남 만주에 형성된 한인사회를 관할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한 단체였다. 한인사회를 관할하며 자치활동을 이끌기 위해 3권 분립에 입각해, 중앙행정위원회·중앙심판원·중앙의회 등을 설치하였다. 그리고 항일무장활동을 수행하기 위한 정의부 의용군을 편성하였다. 성립 초기 자치활동을 총괄해 책임질 중앙행정위원장에는 이탁(李沰)이 선임되고, 의용군 사령관은 지청천(池靑天, 이명 이청천[李(靑天, ])이 맡았다. 중앙조직 외에 광활한 남만주 각 지역에 형성된 한인사회에는 총관(總管)·지방(地方)·구(區) 등의 지방조직이 설치되었다. 성립초기 중앙조직의 본부와 의용군 사령부는 리우허현에 만들어졌고, 산하의 각 중대 및 소대는 리우허·퉁화(通化)·싱징(興京)·관뎬현(寬甸縣) 등에 분산 배치되었다. 화성의숙은 이 같은 정의부가 2세들에게 민족교육을 시키고, 장차 독립군 요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중앙본부 직계로 설립한 학교였다. 중앙본부가 있는 리우허현과 접한 화뎬현(樺甸縣)에 설립되었고, 숙장(塾長)은 최동오(崔東旿)였다. 화성의숙에서 2년간의 학업을 마치고 1927년 4월 졸업하였다. 그리고 정의부 의용군에 입대해 제6중대 소속 독립군이 되었다. 이 시기 정의부 의용군 사령관은 지청천에 이어 송암(松菴) 오동진(吳東振)이 맡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정의부를 비롯한 만주지역의 독립운동 단체 지도자들은 1927년 초부터 시작된 민족유일당(民族唯一黨) 운동에 전력을 쏟고 있었다. 민족유일당 운동이란 만주 내에 있는 모든 독립운동 단체들을 이념과 노선을 무시하고 하나로 통합시키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에 정의부 지도층이 동조해 움직이며 조직이 해이해지는 기미가 있자, 의용군 지휘관 중에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군기를 문란시키는 사람들이 나왔다. 이에 오동진은 1927년 2월 의용군 간부들을 대폭 교체하며 체제를 강화하였다. 즉 4중대, 5중대장이었던 이규성(李奎星)과 주하범(朱河範)을 면직시키고, 그 자리에 양세봉(梁世鳳)과 이희연(李希淵)을 임명했다. 얼마 후 이희연은 제6중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희연이 중대장일 때 의용군에 입대한 것이다. 1927년 7월 하순 중대장의 명령을 받고 동지 홍재명(洪在明)·조재균(趙在均)과 유격활동에 나섰다. 목표는 리우허현 양초자(樣肖子)에 있는 일본경찰출장소에 근무하는 한국인 순사 이규하(李圭夏)를 처단하는 것이었다. 이규하는 같은 한국인이면서도 주변의 이주 한인을 혹독하게 괴롭혔고 일제 군경보다 더 독립군을 공격하는 데 앞장섰다. 리우허현에 근거지를 구축하고 계속 무장활동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기필코 처단해야 할 인물이었다. 7월 27일 이규하가 머물고 있다는 장소를 사전에 탐문해 조사하고 양초자 북문리(北門里)에 있는 대동합(大同合)이라는 정미소를 급습해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 가 눈에 보이는 두 명에게, 세 명의 대원 모두 방아쇠를 당겨 그 자리에서 사살했다. 그러나 사살된 두 명 중에 이규하는 없었다. 한 명은 일본인 아라이 이치로(荒井一郞)였고, 다른 한명은 한국인 밀정 조영로(趙永魯)였다. 작전 후 일제의 추적을 피해 가며 다른 지역으로 옮겨 계속 유격활동에 참가 하였 다. 그러나 2년이 채 안된 1929년 5월 26일 리우허현 고산자에 들렸다가 중국관군에게 붙잡혔다. 이후 일제의 하이룽(海龍) 영사관 분관에 넘겨졌다가 펑텐(奉天, 현 선양[(瀋陽)]()을 거쳐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1929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사형을 받고, 그 해 12월 16일 평양형무소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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