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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宇得

宇得

187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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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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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흥해(興海)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흥해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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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경상북도 흥해군(興海郡) 신광면(新廣面) 우각동(牛角洞, 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우각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당시 일제 측 기록에 39세였다고 하므로 187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07년 성익현(成益顯)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성익현은 전기의병 당시 춘천부 초장(哨長) 출신으로 민용호(閔龍鎬) 의병부대에 참가해 강원도 통천, 고성, 강릉, 양양 등지에서 활동한 바 있으며, 1907년 8월 울진에서 의병을 다시 일으켰다. 성익현은 휘하에 도총장 정경태(鄭敬泰), 부장 이상열 등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들의 의병투쟁은 일제의 침략기구인 경무분견소(警務分遣所)와 우편취급소, 그리고 각 지역의 관아와 징세기구인 세무서 등이 주요한 공격 목표였다. 1908년 6월 정경태가 성익현의 뒤를 위어 관동창의대장이 되자 그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정경태 의병부대는 일본군의 탄압을 피해 각처를 전전하며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을 공격하였다. 이후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로 들어가 영해(寧海)·영덕(盈德)·진보(眞寶)·삼척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이 무렵 신돌석 의병부대는 서울진공작전에 참가했다가 강원도와 경상도 등지의 동해안 일대에서 활동을 펴고 있었다. 1909년 11월 14일 영덕군 복곡동(洑谷洞)에서 전 면장인 신창휴(申昶休)에게 군자금을 요구했으나 거부하자 총살하고, 11월 16일에는 영해군 서면 창수원(蒼水院)에서 의병을 밀고한 하대윤(河大潤)을 처단하였다. 1910년 4월 14일 영덕군 북면 기사동(其思洞) 권하석(權夏錫) 집에서 잠복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혔다. 1910년 5월 30일 징역 7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석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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