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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金庸震

1884. 10. 12 ~ 1937.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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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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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안악(安岳)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안악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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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안명근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84년 10월 12일 황해도 안악(安岳)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을 잠시 다닌 학력이 전부였지만 ‘안악의 제갈량’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재기발랄하고 기업적 수완이 뛰어났다고 한다. 안악 김씨 문중을 대표하는 재산가로 조카 김홍량(金鴻亮) 등과 함께 재령(載寧) 강변의 갈대밭을 개간하여 옥답(沃畓)으로 만들어 막대한 재산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재력을 안악지방의 교육계몽사업과 독립운동 지원에 사용하였다. 당시 애국계몽 지도자였던 평양의 최광옥(崔光玉)을 초빙하여 양산학교(楊山學校)의 여름강습회를 개최하는 등 교육계몽 활동에 재정을 지원하였다. 양산학교 교장이었던 김구(金九) 역시 안악군에 십 수 명의 유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는다고 증언하였다. 김구·김홍량·최명식(崔明植) 등 여러 동지와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하던 중 1911년 1월 일제가 급조한 안명근사건(安明根事件)의 피의자의 한 사람으로 일본 경찰에 구금되었으나 곧 풀려났다. 사업 수완이 좋았으므로 황해도 문화군(文化郡) 내 위치한 궁궁농장(弓弓農場)을 경영하였는데 추수 때가 되면 당시 안신학교(安新學校)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김구에게 추수감독을 맡기기도 하였다. 그 후 안악사건으로 구속된 김구가 1916년 5월 가출옥이 해제되자, 동산평농장(東山坪農場) 농감(農監)을 맡겼다. 동산평농장은 평야지대로 본래 궁장토(宮庄土, 조선시대 궁방이 소유 또는 수조하던 토지)였던 곳으로, 쌀농사가 잘되어 연평균 1,000석 이상을 수확하였다. 또한 구월산의 만학수(萬學水)를 끌어대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던 옥토였다. 이 기름진 동산평농장을 언제부터 경영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오래 전부터 김씨 문중에서 소유한 것으로 보인다. 동산평농장은 당시 이름난 농장이었으나 그 지방 민풍(民風)이 난잡하고 도박과 음주가 성행하는 등 풍기가 매우 문란하여 농장 관리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따라서 김구와 같은 강력한 지도력과 도덕성을 지닌 농장감독을 필요로 했다. 간곡한 부탁을 받은 김구는 이에 승낙하고 농장감독으로 부임하여 「소작인 준수규칙」 과 「근만부(勤慢簿)」 라는 일종의 근무성적 평가제를 실시하였다. 이를 통해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후한 상을 주고 게으른 사람에게는 경작권을 빼앗겠다고 경고하자, 그동안 자행되던 폐습, 곧 도박과 음주문화가 점차 사라졌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후 김구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아낌없는 재정적 후원을 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김구와 최명식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사람을 보내어 동반 입성하라는 전갈을 보낸 것이다. 전갈을 받은 김구와 최명식이 안악으로 가자, 김용제(金庸濟)와 함께 “이번의 서울의 만세사건이란 미국대통령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의해서 우리도 이 기회에 독립을 쟁취하자는 것인데, 한편으로는 국내에서 일제에 대하여 반항운동을 일으키고 한편으로는 상해에서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세계에 선포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할 예정으로 국내 각지에서 많은 대표가 참가하기를 희망한다는 서울로부터의 소식이 있다”고 하면서 김구와 최명식에게 상하이(上海)로 나갈 것을 권고하였다. 그러나 김구와 최명식이 선뜻 경비와 가족문제 등으로 상하이로 망명을 주저하자, “이런 기회에 일을 안 하면 언제 하겠습니까. 두 분이 가장 적임자이니 어떻게 하든 가도록 하세요. 어찌 공짜 징역만 하고 말겠습니까. 두 분이 나간 뒤 가족들의 생활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요. 우리가 전 책임을 지겠습니다”고 하였다 한다. 그리고 “한 사람이 500원씩만 가지면 한 1년쯤은 지낼 수 있지 않습니까. 1년쯤 지나면 그곳에서도 어떤 방도가 생기겠지요”라고 하면서 돈 1,000원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또한 김구 가족 일행이 상하이로 갔다가 모친 곽낙원(郭樂園)이 1926년 귀국할 때 안악에 주택과 살림살이 및 식량과 옷가지 등을 사전 준비해 보살피기도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임시지방연통제(臨時地方聯通制)를 실시하였다. 연통제는 임시정부가 국내에 대한 행정권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비밀 행정조직으로, 도(道)·부(府)·군(郡)·면(面) 단위에 각각 독판부(督辦府)·부서(府署)·군청(郡廳)·면소(面所)를 지방행정관청으로 설치하였다. 황해도 지역에 연통부(聯通府)를 조직하기 위해 입국한 최명식과 함께 11개 군에 연통부를 설치하였다. 1922년 일제의 탄압으로 연통제 시행이 곤란해질 때까지 황해도 일대 전 지역을 돌며 군자금 모금과 기밀문서 전달, 독립운동 상황과 정보 교환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 밖에도 망명한 애국지사들의 가족을 계속 돌보았다. 동시에 안악중학교(安岳中學校), 안악여자학교(安岳女子學校) 등을 세워 후진 양성에 기여했다. 사망 직전에는 선교사들이 운영하던 서울 경신학교(儆新學校) 운영이 어려우므로 학교를 인수하여 운영해 줄 것을 요청받자, 인수자가 나타날 때까지 맡아주겠다고 약속하고 매년 5천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1937년 6월 10일 사망하였으나, 이후 아들 김원량(金元亮)과 사촌 김홍량에 의해 약속은 지켜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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