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조
姜潤祚1890. 1. 15 ~ 1962. 12. 2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통영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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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0년 1월 15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조일정(朝一町, 현 통영시 태평동)에서 태어났다. 강걸조(姜乞祚)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통영면에서 총모자제조업(總毛子製造業)에 종사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통영에서는 3월 13일 진명유치원(進明幼稚園) 보모들의 첫 시위 이후 부도정시장(敷島町市場, 현 중앙동 중앙시장)과 신정시장(新町市場, 현 서호동 서호시장)을 중심으로 몇 차례의 만세 시위가 있었다. 3월 26일 통영향교 장의(掌儀)였던 고채주(高采周)가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자고 권유하자, 김영중(金永仲)·박상건(朴相健)·김두옥(金斗玉) 등 11명과 함께 부도정시장 장날인 4월 2일에 만세를 외치기로 결의하였다. 4월 2일 부도정시장 입구 통영우편소에서 통영경찰서로 이어지는 도로는 모여드는 사람으로 붐볐고, 시장 안 상인들은 이미 상품을 치우며 철시하느라 분주하였다. 3시 30분경 통영경찰서 앞에는 3,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고채주·김영중 등과 함께 군중 앞에 서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이 일제히 호응하였다. 출동한 경찰이 해산을 명령하는데, 소방수까지 동원해 펌프로 물을 살포하자 모자를 벗어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더욱 소리 높여 외쳤다. 수백 명의 사람이 이에 응하여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이에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18일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형을 선고받았다. 대구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5월 13일 기각되었다. 대구감옥에서 복역하다가 경성감옥으로 이감되었고, 이듬해 4월 28일 출소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하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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