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容昶
容昶1926. 8. 3 ~ 1945. 4. 3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덕수공립상업학교
- · 경성보험관리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1926년 8월 3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향남면(鄕南面) 상두리(上斗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노산(老山), 창씨명은 금산무등(金山武登)이다. 1934년 향남공립보통학교(鄕南公立普通學校)에 입학하여 1937년 졸업하였다. 1941년 10월 서울로 올라와 창신동(昌信洞)에 거주하면서 경성제국대학(京城帝國大學) 법문학부(法文學部) 사환(使喚), 체신국(遞信局) 경성보험관리소(京城保險管理所) 고원(雇員)으로 근무하였다. 동시에 야간에는 덕수공립상업학교(德壽公立商業學校)에 다녔다. 1943년 6월부터 자신이 다니고 있던 직장에서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차별이 있음을 알고 불만이 생겨 이때부터 한국역사에 관한 서적을 탐독하면서 민족의식을 높여갔다. 1944년 4월 중순 하숙방에서 같은 학교 학우 김익설(金益卨)에게 “고이소(小磯) 총독은 조선과 일본은 동조동근(同祖同根)이라고 줄곧 외치고 있으나 실제로는 조·일 사이에는 차별이 있다. 뭐가 동조동근인가”라면서 일제의 민족차별정책을 비난하였다. 또 4월 말부터 5월 중순 사이에 학우 마츠모토(松本武)에게 관리소 계장의 차별대우를 비난하면서 “계장과 죽기 살기로 싸워보고 싶다”, 관리소에서는 항상 한국인과 일본인이 싸움을 한다면서 “조선인에게는 기백이 있어서 독립할 생각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는 등 여러 차례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발언을 하였다. 같은 해 5월 중순경 보험관리소 사무실에서 동료 마사키(正木淸)가 모친의 국적인 일본적(日本籍)으로 입적하고 싶다고 하자 그에게, “자네는 부친이 조선인이므로 조선인이다. 지난날 조선에서는 독립을 도모하고자 만세사건 등 봉기가 있었으나 무기가 없어서 결국 실패로 끝났다. 현재는 지원병제와 징병제가 실시되어 조선인은 다수가 병정이 되므로 조선은 반드시 독립한다. 조선의 역사를 보더라도 조선인은 일본인보다 우수하고 실제로 미국·러시아·상하이(上海) 방면에서는 조선인이 활발하게 조선독립운동을 하고 있단다. 조선이 독립하면 나는 일본인을 쫓아 버릴 작정이다. 이번 전쟁에 일본이 패한다 하더라도 조선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고 오히려 못이기는 편이 행복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라고 설득하였다. 그즈음 보험관리소 1층 화장실 판자벽에 연필로 “반도 2천 6백만 동포여. 자, 일어서라! 조선 독립의 때는 왔다. 지금 와서 지원병이니 징병이니 하고 있다. 아아! 가련하도다”라고 낙서를 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44년 12월 1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대전형무소로 이송된 후 1945년 4월 3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변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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