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배
金沄培1899. 3. 24 ~ 1934. 9. 2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3)
관련 사건
- · 제주 조천읍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3) 1899년 3월 24일 제주도 북제주군 조천읍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희수(金熙穗)이다. 본관은 김해이고, 호는 해강(海岡)이며 이명은 김신배(金申培) 혹은 김제민(金濟民)을 사용하였다. 어렸을 때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19년 3월 제주도 조천읍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후 일본 시즈오카(靜岡)현에 건너가 군밤장수를 하면서 독립운동을 결심하고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에 나섰다.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3월 21~24일까지 전개된 제주도 조천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제주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1일부터 같은 해 3월 24일까지 4일간 조천 지역을 중심으로 인근의 함덕·신흥·신촌 등지에서 일어났다. 조천 만세시위는 당시 조천 출신이었던 김장환(金章煥)이 독립선언서를 몰래 숨기고 귀향하여 서울의 시위 소식을 알리면서부터다. 김장환·김시범(金時範)·김시은(金時殷) 등과 조천리 미밋동산에서 거사를 결행할 것을 다짐하고 3월 19일까지 11명의 동지를 규합하였다. 거사일은 김시우의 기일인 3월 21일로 정하고 대형 태극기 4장과 소형 태극기 300여 장을 제작하였다 3월 21일 미밋동산에 태극기를 꽂은 김시범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김장환의 선창으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조천 비석거리까지 행진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시범·김시은·김장환 등 13명이 일제 경찰에 끌려갔다. 3월 22일에는 조천장터에서 백응선·박두규·김필원의 주도 하에 200여 명이 전날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2차 만세 시위를 벌였으나 강제 해산되었다. 3월 23일에도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다시 요구하며 조천 오일장터에서 백응선·김연배·이문천의 주도로 3차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24일 조천 오일장날에도 김연배를 중심으로 조천장터에서 약 1,500명의 주민이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4차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때 김연배 등 4명이 붙잡히고 만세 운동의 핵심 인물 14명이 모두 잡힘에 따라 만세시위 운동은 일단락되었다. 조천 만세시위로 1심에서 29명이 기소되었고 그 가운데 23명이 1919년 4월 26일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청에서 실형을 받았다. 한편, 조천 만세시위로 일제 경찰의 검속이 시작되자 부산으로 피신하였다. 그리고 1920년 2월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상하이에서 김창숙(金昌淑)·손영직(孫永稷) 등과 함께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같은 해 11월 김창숙과 손영직으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명령받고 귀국하였다. 12월 경남 밀양에 살고 있던 손종현(孫宗鉉) 등 부호 13명에게 군자금 모집과 관련한 비밀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부산에서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당시 비밀 편지와 함께 『한국독립사』를 국내에 반입해 독립운동을 전파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총장 이시영의 명령으로 국내에 들어와 활동 중이던 제주도 조천 출신 문봉기(文奉祺)와 같이 활동하다 일제 경찰에 함께 붙잡혔다. 1921년 6월 2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박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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