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국
金元國1870. 11. 11 ~ 1910. 5.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호남창의회맹소
- · 대동창의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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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3) 현재의 전라남도 광주시(光州市) 당부면(當府面) 북촌리(北村里)에서 태어났다. 의병 김원범(金元範)의 형으로 전라도 지역에서 항일 의병 투쟁을 벌였다. 1905년 9월 광산군(光山郡) 송정읍(松汀邑)에서 일본군을 죽이고 피신하였다. 1906년 3월 동생 원범(元範)과 함께 광주 무등촌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였다. 1907년 9월 호남 의병부대의 거두인 성재 기삼연(省齋, 奇參衍)과 김준(金準, 일명 (金泰元))이 합진하여 호남창의회맹소를 조직하자, 12월 김준의 휘하에 들어가 선봉장이 되었다. 김준의 사후 동생 김원범이 1908년 9월 광주 선암시장(仙岩市場)에서 조경환(曺京煥) 의병부대에 가담한 사실을 알고 합류하여 선봉장이 되었다. 1909년 1월 조경환 의병장이 사망하자, 휘하 의병부대를 스스로 통솔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곽진일(郭鎭一)을 선봉장, 오덕신(吳德信)을 중군장, 김재연(金在淵)을 후군장, 이교학(李敎學)을 도포장, 조찬성(趙贊成)을 호군장(犒軍將)으로 하여 호남 일대에서 의병투쟁을 벌였다. 주된 근거지는 함평군 적량면(赤良面)·여황면(艅艎面)·오산면(鰲山面), 주로 활동한 지역은 광주·나주·능주·동복·창평·담양·장성·영광 등의 각 군에 걸쳐 있었다. 1909년 초에는 장성 남일면(南一面), 나주 불갑산(佛甲山)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고, 1909년 3월에는 장성군 남일면에서 부하 150명을 거느리고 일본 군경과 교전하였다. 3월 18일 부하 80명과 함께 나주(羅州) 등지에서, 5월 19일에는 불갑산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그 해 6월 10일 저녁, 광주 우암면(牛岩面) 우산(牛山)에서 80여 명의 의병들과 함께 머물렀다. 이 소식을 접한 오노다(小野田) 특무조장의 지휘를 받던 일본군 제2연대 제8중대 15명과 경찰 5명이 합동으로 의병부대가 머물던 우산을 포위, 습격하자 일본군과 교전 중 김자선(金子先)·이원거(李元巨)·이운집(李云集)·선재국(宣在國)·김태익(金泰益) 등 6명의 의병과 함께 붙잡혔다. 이후 목포로 압송되던 도중 호송하던 일본 헌병의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서 결박당한 손을 몰래 풀고 돌을 집어서 헌병을 타살한 후 함평 먹굴산에 잠시 피신하였다. 1909년 11월 불갑산으로 이동 중 일본군에게 다시 붙잡혀 광주경찰서를 거쳐 대구감옥으로 이송된 뒤 총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홍순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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