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渭昌

渭昌

1900. 9. 2 ~ 1941. 1. 2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渭昌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0) 1900년 9월 2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서변동(西邊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유림이다. 1919년 의성 지역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의성군의 만세운동은 3월 12일 비안면(比安面)의 비안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이 최초로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부터 23일 동안 7개 면에서 21차례 일어났다. 이 중 점곡면의 만세시위는 18일 의성면 의성장터에서 만세시위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 처음에는 송내동 교회의 권수백 조사(助事)와 같은 기독교인들에 의해 추진되었으나, 이후 지역 유림들이 적극 합류함으로써 시위가 본격화되었다. 1919년 3월 18일 김태호(金太鎬)·김점득(金占得)·김수석(金壽錫)·김무호(金武鎬)·김봉식(金鳳植)·김유경(金酉庚)·김기호(金基鎬)·김구종(金九鍾) 등이 만세시위를 논의하자, 이 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당일 밤 9시경부터 11시경까지 점곡면 사촌동 앞길에 모인 30~40명의 주민이 중심이 되어 만세시위를 펼쳤다. 3월 19일에는 이른 아침부터 시위가 시작되었다. 사촌동 앞길에 모인 200여 명의 주민들은 김태호 등의 주도 하에 점곡면 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 진입을 시도하였다. 이 소식은 인근 지역들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윤암동에 거주하는 영양 남씨 가문의 남승순(南勝淳)과 그의 아들 남규우(南圭佑)는 23명의 사람들을 모아 사촌동으로 향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밤 9시경에는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 약 500명이 사촌동 거리에 집결하게 되었다. 군중들은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로 몰려가거나 주위를 돌면서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3월 20일 새벽 1시경 경찰의 위협 발포 속에 해산하였다. 날이 밝으면서 경찰의 검거가 시작되었고, 이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17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1941년 1월 2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