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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경

金酉庚

1897. 6. 12 ~ 193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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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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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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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경북 의성군 점곡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8) 1897년 6월 12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점곡면(點谷面) 서변동(西邊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의성군 점곡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의성군의 만세시위는 총 18개 면 중 7개 면에서 전개되었다. 이 중 점곡면에서는 3월 18일부터 3월 20일까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3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의 시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였다. 3월 18일 인접한 의성면 의성장터에서 시위가 일어나자, 같은 날 김태호(金太鎬)·김점득(金占得)·김수석(金壽錫)·김무호(金武鎬)·김위창(金渭昌)·김봉식(金鳳植)·김기호(金基鎬)·김구종(金九鍾) 등은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밤 9시경 점곡면 사촌동 앞길에 모인 30~40명의 주민들과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밤 11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이튿날 사촌동 앞길에 이른 아침부터 200여 명의 주민들과 함께 모였다. 이들과 함께 점곡면 주재소로 몰려가 주재소를 포위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경찰이 해산을 시도함에 따라 잠시 주춤하기도 하였지만, 윤암동·서변동·송내동 등의 주민들이 속속 사촌동으로 모여들면서 재차 만세시위 동력이 갖춰졌다. 이에 저녁 9시경에는 군중의 규모가 대략 500명에 이르렀다. 이들과 함께 주재소를 중심으로 시위를 전개하였다. 새벽 1시경 경찰의 발포로 시위대와 함께 해산하였다. 날이 밝자 많은 사람들이 붙잡혔다. 그러나 검거망을 빠져나와 밤 10시 또 다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 후 붙잡혀 1921년 2월 10일 대구지방법원 의성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1936년 8월 14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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