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곤
金有坤1897. 4. 4 ~ 1920. 10.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2)
관련 사건
- · 경북 영일군 청하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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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1992) 1897년 4월 4일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현 포항시 북구) 청하면(淸河面) 미남리(美南里)에서 김윤선(金允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1908년 2월부터 한문사숙(漢文私塾)에서 11년간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16년 3월 부친을 따라 청하면 덕성리 덕성교회(德城敎會, 현 청하제일교회)에 입교하여 1918년 4월 집사(執事)로 임명되었다. 1919년 3월 영일군 송라면 대전리 기독교 장로파 대전교회(大田敎會)의 영수(領袖) 윤영복(尹永福)은 서울·평양·대구 등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와 포항에서 기독교 신자들에 의해 전개된 만세시위에 크게 고무되었다. 이에 덕성교회 영수 오용간(吳用干)과 덕성교회 교사로 있던 윤영만(尹永滿)을 만나 3월 22일 덕성리 장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논의하였다. 윤영복은 3월 18일, 오용간은 3월 21일 각자 자기 집에서 큰 태극기 1개와 작은 태극기 20개를 만들었다. 이어서 윤영복은 대전교회 집사 이준석(李俊石)을 비롯하여 신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찬동을 얻었으며, 오용간도 덕성교회 신자들에게 각처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하였다. 당시 덕성교회의 집사이던 부친을 비롯한 윤도치(尹道致)·이상호(李相浩)·김만수(金萬守)·정백용(鄭伯用) 등과 함께 오용간의 집과 대전리 덕성교회에서 3월 22일 덕성 장날 시장으로 집합하여 함께 만세를 부르기로 약속하였다. 3월 22일 오후 1시경 부친과 함께 덕성교회 신자들을 이끌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덕성리 길거리로 나아가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덕성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한 윤영복·오용간 등 23명과 함께 붙잡혀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19년 4월 28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부친과 함께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가혹한 고문과 옥고로 인한 후유증을 얻어 1920년 10월 3일 24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권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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