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有凡
有凡1902 ~ 1933. 3. 2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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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9) 정확한 생년월일은 확인되지 않는다. 1933년 당시 32세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1902년생으로 추정된다. 본적은 함경북도 명천군 아간면(阿澗面) 만호동(萬戶洞)이고 활동 당시 주거지도 동일하다. 직업은 농업이며 김중삼(金中三)이라는 이명을 사용하였다. 1930년 12월, 허화정(許和正) 등과 함께 아간면 용암동(龍岩洞) 김철진(金哲振)의 집에서 야체이카를 구성하고 책임자가 되었다. 함북 길주군에서 태어나 간도에서 활동하다 귀국한 허화정은 이 시기 홍달수(洪達洙)와 연결돼 조선공산당재건설준비위원회에 가입했다. 따라서 참여한 야체이카는 이 계통의 조선공산당 재건운동 조직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1931년 1월에는 자신의 집에서 허화정 등과 만나 함께 야체이카 회의를 개최하고 농민위원회 조직 결성과 향후 진로를 협의하였다. 이와 같이 지역 내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1년 서울 용산경찰서에 의해 붙잡혔다. 용산경찰서는 5월 1일 메이데이를 전후하여 각지의 사회운동자 체포에 나섰는데, 이를 ‘조선공산당 공작위원회 사건’이라고 명명했다. 1933년 4월 예심이 종결될 때까지 이 사건으로 약 500여 명이 수사 대상이 되었다. 경성지방법원으로 송치되어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로 받았으며, 7월 30일 기소되어 예심에 회부되었고 이후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2년 가까이 감옥에 갇혀 있던 1933년 3월 24일,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조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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