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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식

金有式

1899. 9. 12 ~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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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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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의성(義城)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의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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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경북 의성군 안평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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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9년 9월 12일 경상북도 의성군(義城郡) 안평면(安平面) 박곡동(朴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당시 21세였다. 의성군의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12일 비안면(比安面)에서 시작되었고, 안평면에서는 3월 15일부터 19일까지 5차례 시위가 있었다. 안평면 시위는 군내 다른 시위와는 달리, 처음 대사동교회 교인들이 주도하였고, 주로 주재소를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등 격렬히 전개되었다. 3월 15일 대사동교회의 김옥돈(金玉頓)과 이종출(李鍾出)의 주도로 60~70명의 군중이 대사동 우리골(尤利谷)에서 만세시위을 시작하였다. 3월 16일에도 비슷한 규모의 군중이 모였는데, 이때부터 주재소 주변이 시위 무대가 되었다. 3월 17일에는 그 규모가 훨씬 커져서 400명에 이르는 군중이 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이때부터 경찰의 직접적인 대응이 시작되었다. 3월 18일에는 300여 명의 시위대가 안평면 곳곳을 누비며 만세를 외쳤다. 3월 19일 안평면 만세시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시위에 참가하였다. 안평면의 만세시위를 처음으로 계획한 김옥돈 등은 도리원시장의 장날이던 3월 19일을 기해 대대적으로 시위대를 규합한 결과, 1,000명 이상이 시위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 시위에 참여하여 이양준(李良俊)·김도식(金道式)·김일석(金日錫) 등과 함께 시위대 선두에서 주재소 투석(投石)을 이끌었다. 이 5일 동안의 시위로 인해 51명이 체포되었고, 26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 권사연(權士淵)과 함께 붙잡혀 1919년 5월 10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자 항소하였다. 같은 해 6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59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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