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길
金潤吉1889. 4. 24 ~ 1931. 11. 4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08)
관련 사건
- · 동래군 구포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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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08) 1889년 4월 24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구포면(龜浦面) 구포동(龜浦洞,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동래군 구포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중순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던 가운데 구포 출신으로 당시 경성의학전문학교(京城醫學專門學校) 학생이던 양봉근(楊奉根)이 내려와 구포면서기 임봉래(林鳳來)에게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면서 만세운동의 소식을 전하면서 구포지역의 만세운동이 계획되었다. 이 만세시위 계획을 듣고 3월 27일과 28일 구포면 구포리의 박영초(朴永初)·이수련(李守蓮) 집에서 임봉래·유기호(柳基護)·윤경(尹涇)·김옥겸(金玉兼)·허정(許楨)·김용이(金用伊) 등을 만나 논의를 거듭한 끝에, 구포 장날인 3월 29일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 동지들과 함께 거사를 위해 교대로 밤을 새워가면서 독립선언서 태극기 수백 매를 제작하였다. 3월 29일 정오가 되자 준비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구포시장에 모여든 시위군중 1,000여명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도중에 김옥겸 등 동지와 함께 구포면사무소로 가서 윤영태(尹永台) 면장에게 “한국인인데도 왜 시위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대나무로 탁자를 두드리며 만세운동에 참여하도록 촉구하였다. 이때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해 시위 주도 인물로 지목되어 구포주재소에 구금되었다. 이들의 구금 소식을 전해 듣고 임봉래, 윤정은(尹正殷) 등은 1,2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구포주재소로 달려가 주도 인물의 석방을 요구하며 투석전을 벌이다 일본 경찰의 무차별 발포로 해산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7월 16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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