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允熙
允熙1894. 12. 11 ~ 1930. 12.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신민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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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1894년 12월 11일 평안북도 후창(厚昌)에서 출생하였다. 본적은 강원도 고성군(高城郡) 현남면(峴南面) 마원리(馬遠里)로 확인된다. 15세 때 가족과 함께 만주로 가서 지린성(吉林省) 위하현(葦河縣) 석두하자(石頭河子)에서 살았다. 1926년 3월 중국 지린성 위하현 오길밀소량자(烏吉密小亮子)에서 최호(崔浩)의 권유로 신민부(新民府)에 가입하였다. 신민부는 1925년 3월 닝안현(寧安縣)에서 결성된 북만주 최대의 독립운동 단체로 영안과 주하(珠河)·목릉(穆陵)·밀산(密山)·요하(饒河)·돈화(敦化) 등의 이주 한인들을 관할하였다. 한인들의 자치활동을 펼치면서 군자금 모집 및 친일파 척결 등 항일무장투쟁도 전개하였다. 민사부 소속 지방 민정위원으로서 이주 한인의 교육과 실업 장려 등 자치활동에 힘썼다. 1928년 1월 27일 업무를 수행하던 중 일제의 하얼빈영사관 경찰 및 중국군 1개 중대의 공격을 받았다. 이때 신민부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김혁(金爀)을 비롯하여 중앙집행위원 유정근(兪政根)·경리부 위원 김봉훈(金鳳壎)·민사부 위원 남중 희(南重熙)·이춘섭(李春燮)·서광수(徐光洙)·윤영순(尹永順)·박광원(朴光遠) 등 다수의 간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8년 3월 11일 신의주경찰서로 이송되었고, 4월 4일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었다. 약 6개월간의 조사를 거친 후 예심에 부쳐져 1928년 10월 신의주지방법원 공판에 회부되었다. 이 과정에서 황처준(黃處俊)이 폐병으로 사망하였다. 1929년 6월 12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역시 징역 2년을 받았다. 1930년 12월 15일 평양형무소에서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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