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金允三

允三

1886 ~ 1908. 7. 2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金允三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5) 정확한 출생 시기와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1886년에 태어나 전라북도 태인군(泰仁郡) 동지면(東池面) 학삼리(鶴三里)에 거주하였다. 1908년 이동식(李東植)과 함께 의병에 참여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의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광무황제를 압박하여 퇴위시키고, 7월 24에는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 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강제 해산시켰다. 8월 1일 서울의 시위대(侍衛隊)에 대한 해산조치가 강행되자 제1연대 제1대대장이던 박승환(朴昇煥)이 분연히 자결하였고 이에 시위대 2개 대대가 일본군에 대항하여 전투를 벌였다. 지방에서도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를 시작으로 군대 강제 해산에 대한 무력 저항이 촉발되어 전국적인 의병전쟁으로 발전하였다. 이런 상황을 맞아 1908년 경 이동식(李東植)·김정명(金鄭明) 등과 함께 거의(擧義)를 모색하게 되었다. 이들은 7월 16일 태인군 동지면의 이동식 집에서 의병 활동을 위한 계획을 의논하였다. 그러나 7월 17일 첩보를 입수한 금구주재소(金溝駐在所) 순사들에게 동료 4명과 함께 붙잡혔다. 전주수비기병대(全州守備騎兵隊)에 감금되어 취조를 받던 중 7월 21일 탈주를 시도하여 김정명은 성공하였으나, 이동식 등 다른 동료 3명과 함께 피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재열⋮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