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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순

金寅淳

187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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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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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북 회령(會寧)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북도 회령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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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6) 함경북도 회령군(會寧郡) 회령면 일동(一洞) 출신이다. 자료에 의하면, 1920년 당시 43세인 점으로 미루어 1878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2월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모연대(募捐隊)에 가입하여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대한군정서는 1919년 만세운동을 계기로 같은 해 8월 만주 일대의 대종교도와 의병, 공교회원 등을 규합하여 조직한 독립군단이었다. 성립 초기에는 대한군정회(大韓軍政會)였다. 이후 1920년 10월 독립전쟁을 기도하는 독립군사정부를 지향하며 군정부로 개칭하였으나 그 해 12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지하면서 대한군정서로 다시 개칭하였다. 왕칭현(汪淸縣) 춘명향(春明鄕) 유수천(楡樹川)에 총재부를, 춘명향 서대파구(西大坡溝)에 군사령부를 두고 무관학교인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설치하여 독립군 간부 양성에 전력을 기울여 북간도의 유력한 독립군단으로 성장하였다. 1920년 2월 함북 회령군 회령면 이동에서 곡물상을 하던 임태순(林泰淳)은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온 대한군정서 모연대원(募捐隊員) 김명호(金明浩)의 권유를 받아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들은 대한군정서 모연대와 협의하여 회령의 자산가들인 김정균(金楨均)·김이래(金爾來)·노운서(盧雲瑞)·홍경화(洪卿和)·이동운(李東雲)·진홍진(陳鴻振) 등을 간도로 데려가 이들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도모하였다. 모집한 군자금으로는 간도에 토지를 매입하여 국내의 가난한 동포를 이주시켜 농사를 짓게 하고 청년들을 모아 무관학교에 보내어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간도에 상점을 개설하여 국내 큰 상점과 연락하며 독립군에게 필요한 물품을 싼 가격에 공급할 계획이었다. 김명호로부터 이러한 계획을 듣고 군자금 모집에 함께 하기로 하고 그 해 4월 30일 북간도의 송언동(松堰洞) 김상원(金相元)의 집에 가서 대한군정서 모연대 제4대장 이홍래(李鴻來) 등에게 김명호의 계획을 보고하고 찬동을 얻었다. 5월 2일 이홍래, 김명호 등 5명과 함께 회령의 국민학회(國民學會)에 모여 앞서의 계획을 실행하기로 하였다. 그날 밤 이홍래와 김명호는 회령군 참사 김정균의 집으로 갔고, 임태순은 나머지 대원 3명을 안내하여 김이래 집으로 갔다. 그러나 김이래는 이미 도망하고 집에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반면 김정균의 집으로 간 이홍래와 김명호는 그를 납치하여 두만강을 건너 간도 증산곡(甑山谷) 초가로 데려가 사촌동생인 김성균(金聖均)에게 1만원을 가져오라는 편지를 보내게 하였다. 동생 김희균(金熙均)이 김성균의 연락을 받고 같은 달 5, 6일경 김정군 소유의 러시아 지폐 10만 불을 가지고 와서 모연대에 지불하였다. 이후 이 사실이 발각되어 임태순과 함께 붙잡혔다. 1920년 7월 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4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그 해 10월 28일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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