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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

金鍾涉

1893. 7.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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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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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초산(楚山)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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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6) 1893년 7월 12일 평안북도 초산군(楚山郡) 동면(東面) 구룡동(龜龍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종섭(金鍾燮)이다. 1920년대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군자금을 모으다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만세운동 후 4월 국내에서 의병운동을 주도하다 만주로 망명한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백삼규(白三奎) 등이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대화사(大化斜)에서 조직하였다. 창단 초기 중앙 본부에는 도총재부(都總裁部)와 사무기관인 총단(總團)을 두었다. 도총재는 박장호, 부총재는 백삼규였고, 총단의 총단장은 조맹선, 부단장은 최영호(崔永浩)·김원섭(金元燮)이 맡았다. 창립 초기 세력 확대를 위해 단원 및 군자금 모집에 노력하여 그 해 말 만주 각지에 많은 지방지단을 설치하였다. 지방지단은 환런(桓仁)·푸쑹(撫松)·린장(臨江)·관톈(寬甸)·지안(輯安) 등 남만주 10개현에 설치되었다. 한인 동포 100호 이상 지역을 구(區)로 정하여 구관(區管)을 두었고, 10구 마다 단장을 임명하여 자치행정을 실시하였다. 단원들은 남만주 각지에서 친일 밀정 처단과 군자금 모집을 하였고 국내에도 단원을 파견하여 일제 기관 파괴와 일본 관헌 처단, 지단 설치 등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1920년 (음)7~8월경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여 검찰(檢察)로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 검찰로 임명된 뒤 1920년 10월 독립단원 김여정(金汝正)·석환옥(石煥玉), 특무검찰 김일봉(金逸奉), 지방소집원 박찬봉(朴燦鳳) 등과 함께 10월 24일 밤 초산군 남면 구룡동(龜龍洞)에 있는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로 계획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면사무소를 습격할 때 면사무소 가까이 있는 경찰관주재소 순사가 공격할 우려가 있어 김여정이 주재소 뒷산에서 총을 쏘아 순사를 혼란케 하는 동안 나머지 단원들이 면사무소를 습격하기로 작전을 짰다. 몇 일전 최창전(崔昌典)의 밭 가운데 숨겨두었던 권총 다섯 자루를 찾아 이경주(李京冑) 집에 옮겨두고 임계익(林桂益) 집에서 저녁을 먹고 총기 사용법을 배웠다. 10월 24일 밤 이들은 면사무소를 습격하였다. 계획한대로 김여정이 경찰관주재소 뒷산에서 총을 쏘아 순사들을 훈란에 빠지게 하는 동안 박찬봉과 함께 면사무소 앞에서 망을 보고 석환옥 등은 면사무소로 즉시 들어갔다. 석환옥은 당시 숙직실에 있던 회계원 이현식에게 자신들은 대한독립단원임을 알리고 세금으로 거둔 공금을 독립자금으로 내놓으라고 협박하였다. 그러나 마침 현금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석환옥 등은 숙직실에 있던 화로를 가져와 면사무소에 있던 문서와 기타 서류를 모두 태우고 면사무소마저 불태워 버렸다. 초산경찰서의 추적으로 1921년 6월경 관련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21년 9월 26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과 방화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1922년 2월 15일 기각되었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23년 징역 11년 3월로 감형을 받아 1932년 6월 3일 가출옥하였다. 이후의 행적과 사망연월일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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