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羅采弘

采弘

1884 ~ 1923.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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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羅采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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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자성(慈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자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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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84년 평안북도 자성군(慈城郡) 삼풍면(三豊面) 역수동(逆水洞)에서 태어났다. 1920년대 초 만주 지역 독립운동 단체들이 국내진공 작전을 전개할 때 독립군의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그 이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경술국치 이후 국권회복운동은 독립운동으로 전환하였다. 국내 활동이 일본의 억압과 탄압에 의해 어려워지자 많은 독립운동가가 잇따라 만주지역으로 건너갔다. 북간도와 서간도 지역의 많은 한인을 기반으로 독립운동단체들이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였다. 북간도에는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 서간도에는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비롯해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 등이 설립되었다. 1920년 10월 일본의 전면적인 ‘탄압’ 작전이 시작되면서 서간도를 걸쳐 북간도까지 일제의 탄압이 확산되었다. 북간도 지역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일본군의 공격에 맞서 몇몇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일본군의 병력과 무기의 우세 앞에서 독립운동단체들은 후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독립운동단체는 러시아로 후퇴하였고, 일부는 국내로 진입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국내로 진입한 독립운동단체의 연락원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활동을 지원하였다. 그러던 중 1923년 가을 자성경찰서 형사 계모(桂某)의 가족을 공격할 때 동조하였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붙잡히게 되었다. 혹독한 심문에도 끝까지 굴복하지 않자 외 일본 경찰 2명에게 1923년 10월 30일 자성군 자작령(自作嶺)에서 삼풍면 무선동(舞仙洞)에 거주하던 한모(韓某)와 함께 사살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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